<음악의 아버지>란 애칭을 가진 바흐는 실제로도 다둥이 아빠였습니다. 결혼을 두 번 했고, 20명의 자녀가 있었어요. 무려 20명의 자녀를 둔 아버지라니! 정말 <The 아버지>라는 칭호가 부를 만하죠?
바흐의 첫 번째 부인은 1707년에 결혼한 육촌 누이 마리아 바르바라 바흐라는 여성입니다.
두 사람은 금슬이 꽤 좋았는지 7명의 자녀를 낳아요. 하지만 바로크 시대는 유아 사망률이 높았던 때라 첫 번째 부인의 자녀 중 3명이 어린 나이에 죽게 됩니다.
불행은 거기서 그치지 않고 결혼할지 14년 만에 아내 바르바라 마저 병으로 세상을 떠나요. 사랑하는 아내와 자녀를 잃은 슬픔에 잠길 틈도 없이 바흐는 또 다른 사랑에 빠지게 됩니다.
바르바라가 사망한 지 일 년 뒤인 1721년, 바흐는 궁정 트럼펫 연주자의 딸이자 소프라노 가수였던 안나 막달레나 빌케와 재혼합니다. 결혼 당시 바흐는 36세, 안나는 20세로 나이 차이가 무려 16살이나 났어요.
첫 번째 부인과 달리 음악인이었던 안나는 적극적으로 바흐의 창작 활동을 돕습니다. 악보를 그리는 솜씨가 수준급이라 바흐가 출판할 악보를 직접 사보하기도 하고, 어깨너머로 작곡을 배워 곡도 썼다고 해요.
가만히만 있어도 사랑스럽고 예쁜 아내인데 자신의 작곡 활동까지 도와주니 얼마나 좋았겠어요. 바흐는 안나에게 고마움을 표현하기 위해 두 번에 걸쳐 작품집을 헌정합니다. 이게 바로 『Notenbuchlein our Anna Magdalena Bach』 안나 막달레나를 위한 음악 수첩(소곡집)이고, 그중 가장 유명한 곡이 어린 시절 피아노 학원에 다녔다면 단골 메뉴로 쳐봤을 「미뉴에트」입니다.
추천곡 III : 미뉴에트 G장조 - BWV 114안나는 전 부인의 아이들까지 묵묵히 키워내며 13명의 자녀를 더 낳습니다. 하지만 바르바라에게서 태어난 자녀들은 새어머니 안나를 좋아하지 않았어요. 바흐가 살아 있을 때도 그녀의 말을 잘 듣지 않고 동생들을 싫어했는데, 바흐가 죽게 되자 안나와 안나의 자녀들은 더욱 찬밥 신세가 됩니다. 불행하게도 많은 자녀를 먹여 살려야 했던 탓인지 경제적으로 늘 쪼들렸던 바흐는 유산도 많이 남겨놓지 못합니다. 안나 역시 바흐의 뒷바라지를 하느라 생계 활동을 하지 못하던 상황이었죠. 바흐가 죽자 이미 경제적으로 자립한 바르바라의 자식들은 안나와 연락을 끊어버리고, 생활비를 전혀 보태주지 않습니다. 결국 안나는 극빈층으로 죽는 쓸쓸한 말년을 맞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