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ustav Mahler Symphony No.2 in c minor 'Resurrection' Otto Klemperer (conductor) Philharmonia Chorus & Orchestra 1962/03/15, 24 & 1961/11/22-24 Stereo, Kingsway Hall, London |
4월을 잔인한 달이라고 합니다. 영국의 시인 T.S. 엘리어트는 <황무지> (The Wasteland)라는 시에서 이렇게 노래했습니다. “4월은 가장 잔인한 달 /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워내고 / 기억과 욕망을 뒤섞으며 / 봄비로 잠든 뿌리를 뒤흔든다.”
우리에게는 더 잔인한 달입니다. 2014년 4월 16일을 어떻게 잊을 수 있을까요. 단원고등학교 학생 250명을 포함해 모두 304명의 생명이 바다에서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잔인한 달’이라는 표현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여전히 무언가가 가슴을 짓누릅니다.
하나는 슬픔이고, 또 하나는 분노일 것입니다. 시시각각 다가오는 죽음의 공포와 싸우다 숨을 거뒀을 어린 생명들을 생각하노라면 참담한 슬픔이 몰려옵니다. 살릴 수 있었던 아이들을 아직까지 한 명도 구해내지 못한 국가 권력의 무능과 무책임을 생각하면 분하고 억울합니다.
많은 이들이 그랬겠지만 저 역시 그 일이 있고 나서 한동안 글을 쓸 수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황망한 마을을 경우 추스르고 펜을 들어 써내려간 글이 바로 이 글입니다. 지금 당신이 읽고 있는 말러의 《교향곡 2번 ‘부활’》입니다. 독일의 시인 클롭슈토크의 「부활」에서 영감을 받은 이 교향곡의ㅡ 마지막 악장은 이렇게 노래하고 있지요.“다시 일어서라, 다시 일어나 / (중략) / 가혹한 사랑의 투쟁 속에서 / 나는 솟구쳐 오르리라 / (중략) / 일어서라 그래 다시 일어나 / 그대 내 마음이여 어서 일어서라!”
이 교향곡은 죽음을 모티브로 삼았지만 부활을 꿈꾸고 있는 음악입니다. 말러가 완성한 교향곡은 모두 10곡인데, 그중에서도 유난히 종교적인 색채가 짙은 곡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말러는 스물여덟 살이던 1888년에 첫번째 교향곡 ‘거인’을 완성하고 곧바로 이 두번째 교향곡을 구상하기 시작했다고 하지요. 하지만 완성하기까지 오랜 세월이 걸렸습니다. 당대 최고의 지휘자였던 한스 폰 뷜로(1830~1894), 말러와도 친분이 두터웠던 이 지휘자가 세상을 떠난 1894년에 그의 추도식에서 영감을 받아 마지막 악장을 작곡했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최초의 스케치에서 완성까지 6년의 세월이 걸린 곡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세기말의 작곡가 말러는 전작인 《교향곡 1번 ‘거인’(Titan)》의 연장 선상에서 이 곡을 썼다고 전해집니다. 말하자면 교향곡 1번의 음악적 화자였던 ‘거인’이 죽음을 맞는다는 설정으로 시작하는 곡이지요. 물론 말러는 훗날(1896년) 1번 교향곡에서 ‘거인’이라는 표제를 아예 없애 버렸지만, 2번 ‘부활’의 첫 번째 악장을 작곡하던 무렵에 그의 머릿속에 들어 있던 구상은 여전히 ‘거인의 죽음’이었습니다.
이런 지점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겠습니다. 말러는 베토벤의 아홉번째 교향곡 ‘합창’, 특히 마지막 악장에서의 합창을 자신의 음악적 이상으로 여겼습니다. 말러가 흠모했던 작곡가 바그너도 마찬가지였지요. 바그너는 음악과 문학이 혼연일체된 종합예술을 추구했고, 말러도 자신의 교향곡에서 그런 이상을 실현해보려고 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초기 교향곡들을 일종의 ‘교향시’로 간주했습니다.
물론 말러는 훗날 자신의 음악이 표제 없이 연주되기를 바란다는 의사를 표했지만, 적어도 두번째 교향곡을 작곡할 무렵의 말러는 문학적 언어를 합창으로 표현해내는 일종의 ‘칸타타 심포니’를 꿈꾸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폴란드의 시인 아담 미츠키에비츠(1789~1855)의 시에서 착상을 얻어 단악장의 교향시를 작곡했고, 그 곡에 ‘장례식’(Todtenfeier)이라는 제목을 달았지요. 그것이 바로 《교향곡 2번》의 1악장입니다.
하지만 말이 씨가 되었을까요? 말러는 교향시 ‘장례식’을 작곡한 이듬해에 잇따른 슬픔을 겪습니다. 같은 해 2월에는 아버지가, 10월에는 어머니가 세상을 떴습니다. 이어서 여동생 레오폴디네가 뇌종양으로 생을 마감했습니다. 이 장면은 훗날(1904년) 말러가 가곡 <죽은 아이를 그리는 노래>를 완성하고 3년 뒤에 실제로 장녀 마리아를 잃었던 상황과 겹치지요. “인생과 예술은 별개가 아니다”라고 믿었던 말러에게 애통한 운명이 잇따르면서, 그는 죽음의 그림자가 자신의 곁에서 노상 서성인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릅니다.
1907년에 썼던 아홉 번째 교향곡을 ‘9번’으로 칭하지 않고 ‘대지의 노래’라고 명명했던 것도 역시 죽음에 대한 공포 때문이었습니다. 심장병을 안고 살아야 했던 그는 베토벤과 브루크너가 9번 교향곡을 마지막으로 세상을 떠났다는 것을 일종의 터부로 받아들였고, 그 운명의 화살을 어떻게든 피하려 했지요. 하지만 애써 피하려는 자에게 운명은 더 끈덕지게 달라붙는 것일까요. 말러는 《대지의 노래》 이후 작곡한 교향곡에 결국 ‘9번’이라는 번호를 붙였고 불길한 예감은 결국 현실이 되고 말았습니다. 9번은 말러가 완성한 마지막 교향곡입니다.
《교향곡 2번 ‘부활’》의 작곡은 더딜 수밖에 없었지요. 사랑하는 가족의 죽음을 겪어야 했을뿐더러 지휘자로서의 공적 활동도 바빴던 탓입니다. 그러다가 마침내 창작의 영감이 찾아온 것은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1894년이었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말러가 그 ‘영감의 번갯불’을 맞았던 장소 역시 죽음을 애도하는 추도식장(장례식장)이었습니다.
당시 독일 음악계의 가장 영향력 있던 지휘자였던 한스 폰 뷜로가 그해 2월 12일에 이집트 카이로에서 사망했고, 3월 29일에는 독일 함부르크의 미하엘리스 교회에서 추도식(장례식)이 치러졌지요. 물론 말러도 그날의 행사에 참석했습니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마침내 “번갯불 같은 영감”과 조우합니다. 식를 진행하던 중에 울려퍼진 클로프슈토크의 ‘부활’이 자신의 머리를 때렸다는 기록을 말러는 이렇게 남겨놓고 있습니다. “오르간 연주대에서 합창단이 클로프슈토크의 ‘부활’을 노래했다. 그것은 번갯불처럼 나를 때렸다. 내 영혼의 눈앞에서 모든 것이 분명하고 뚜렷해졌다. 모든 예술가가 애타게 기다리던 순간이었다.”
《교향곡 2번 ‘부활’》의 클라이막스라고 할 수 있는 마지막 5악장은 그렇게 태어났지요. 말러는 클로프슈토크의 가사를 일부 수정해 자신의 음악 속으로 끌어들였고, 마침내 ‘부활’(독일어로는 ‘Auferstehung’, 영어로는 ‘Resurrection’)이라는 이름의 칸타타적 교향곡을 완성했습니다. 특히 이 곡의 마지막 가사는 말러 스스로 쓴 것입니다. “나는 날아가리/ 살기 위해 죽으리 / 일어서라 그래 다시 일어서 / 그대 내 마음이여 어서 일어서라!”
1악장은 알레그로 마에스토소(allegro maestoso 빠르고 장엄하게). 음을 떠는 트레몰로 주법의 도입부가 강렬합니다. 이어서 저음의 현악기들이 연주하는 첫번째 주제가 등장합니다. 연주가 점점 강렬하게 고조되다가 바이올린이 연주하는, 부드러운 느낌의 두번째 주제가 등장하지요. 말러 스스로 “첫번째 교향곡의 영웅을 무덤에 묻고 그의 생애를 맑은 거울에 비춰본 것”이라는 술회를 남기고 있는 악장입니다. 말하자면 ‘거인(영웅)의 장례’인 셈이지요.
그렇게 한 편의 드라마와도 같은 1악장이 끝나고, 안단테 모데라토(andante moderato)의 템포로 흘러가는 2악장은 목가적입니다. 이 두 개의 악장은 매우 대조적인 성격을 보여줍니다. 말러는 두번째 악장에 대해 “거인의 행복했던 순간에 대한 회상”이라고 설명한 바 있습니다. 중반부에서 잠시 어두운 색채를 드러내다가, 현의 피치카토가 등장하는 악장의 후반부에서 다시 온화한 분위기로 돌아오지요.
3악장은 템포에 대한 별도의 지시 없이, ‘부드럽게 흘러가는 움직임으로’라는 지시가 독일어로 적혀 있는 스케르초 악장입니다. 팀파니의 타격으로 시작해서 스케르초 악장다운 어릿광대풍의 연주가 펼쳐집니다. 인생의 희비극, 기괴함, 그리고 익살맞음이 뒤섞인 악장입니다. 말러의 특유의 통속적 선율이 빈번히 등장하기도 합니다. 혼란스럽게 뒤틀린 우리의 삶, 때로는 악몽을 꾸는 것처럼 공포스러운 삶에 대한 묘사로 이해하면 되겠습니다.
하지만 말러는 이어지는 4악장에서 한 줄기 빛을 불러옵니다. ‘태초의 빛’(Urlicht)이라고 명명한 악장이지요. 알토 독창이 “O Röschen rot!(오 붉은 장미여!)”라고 노래하면서 시작합니다. “Der Mensch liegt in größter Not!(인간은 큰 위기에 처해 있구나!) Der Mensch liegt in größter Pein!(인간은 큰 고통에 빠져 있구나!) Je lieber mocht‘ ich im Himmel sein.(나는 차라리 하늘(천국)에 머물리라)”라는 가사가 이어집니다.
5악장은 마침내 이 칸타타적 심포니의 절정입니다. 종말, 혹은 최후의 심판이 대지를 뒤덮는 광경을 관현악이 묘사합니다. 말러 스스로 “절망의 울부짖음”이라고 칭했던 불협화음으로 막을 엽니다. “계시의 트럼펫”이 울려퍼지고, 멀리서 들려오는 호른은 심판의 날을 알리면서 부활을 암시합니다. 플루트와 피콜로는 나이팅게일처럼 지저귀면서 “지상에서의 삶을 돌아보는 마지막 메아리”를 묘사합니다. 그리고 드디어 성자와 천사들의 노래가 등장하지요. “일어나라, 그래 일어나 / (중략) / 너는 아무것도 잃지 않으리라 / 네가 바란 것이 네 것이 되리, 그래 네 것이 되리 / 네가 사랑했던 것이 네 것이 되리 / (중략) / 그대 내 마음이여 어서 일어서라!”
1.오토 클렘페러(Otto Klemperer), 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합창단 | 1961년 | EMI 브루노 발터가 뉴욕필하모닉을 지휘한 말러 2번(1957년)과 더불어 올드팬들에게 사랑받아온 음반이다. 두 녹음 모두, 이른바 ‘역사적 녹음’으로 통한다. 그중에서도 발터의 지휘는 오랫동안 말러 해석의 전형으로 인정받아온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적어도 2번에 있어서는 클렘페러의 지휘에 한 표를 더 던지고 싶다. 발터에 안정적 해석에 비해 음악의 색채감이 진하고 에너지도 한층 강력하다. 특하 마지막 악장에서 들려주는 노래는 듣는 이의 영혼을 사로잡는다. |
2. 주빈 메타(Zubin Mehta), 빈필하모닉&빈국립오페라합창단 | 1975년 | Decca 주빈 메타의 기량이 한창이었을 때의 연주다. 최근의 메타, 그러니까 이스라엘 필하모닉을 이끌고 내한했던 무대에서 보여줬던 연주는 잠시 잊어버리는 것이 좋겠다. 1970년대의 메타는 최고의 악단인 빈 필하모닉을 강력한 드라이브로 몰아간다. 한 마디로 박력이 넘치는 연주, 그러면서도 섬세함을 잃지 않는 세련된 연주라고 할 만하다. 1악장에서 약간 거친 듯한 느낌이 없지 않지만, 이처럼 긴장감 넘치는 말러 2번을 만나기란 쉽지 않다. 특히 금관의 호연이 돋보인다. 크리스타 루드비히와 일레아나 코트루바스의 가창은 한마디로 감동적이다. |
3. 클라우디오 아바도(Claudio Abbado), 루체른 페스티벌 오케스트라 | 2003년 | DG 아바도는 생전에 《교향곡 2번》을 세차례 녹음했다. 1976년 시카고 심포니를 지휘한 녹음(DG), 1992년 빈 필을 지휘한 녹음(DG), 그리고 오늘 추천하는 루체른 페스티벌 오케스트라와의 녹음이다. 비교적 젊은 시절의 연주였던 시카고 심포니와의 녹음은 2003년 이전까지 아바도의 수작으로 손꼽혀왔다. 하지만 이제는 마지막 녹음이야말로 명실상부한 ‘베스트 초이스’다. 말러를 평생토록 지휘해온 거장의 ‘어떤 경지’를 보여주는 연주라고 할 수 있다. 음반뿐 아니라 DVD(EuroArts)로도 나와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