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의 개요 및 배경
사랑의 절망감을 표현한 환상교향곡
1827년, 파리음악원에서 작곡가의 꿈을 다져가던 25세의 베를리오즈는, 자신의 운명을 뒤바꿔놓을 한 여인을 만나게 된다. 영국 셰익스피어 극단의 파리 공연을 관람하다가 오필리어와 줄리엣을 연기하는 해리엣 스미드슨을 본 그는 헤어나올 수 없는 사랑의 열병에 빠져버린다. 그러나 인기 절정의 여배우였던 그녀는 무명의 작곡가 지망생을 철저히 무시해버렸다. 이때 경험한 비통함과 절망을 베를리오즈는 음악 속에 강렬하게 녹여내었고, 이렇게 완성된 〈환상교향곡〉은 그의 가장 대표적인 작품이자 19세기 음악사에서 가장 중요한 영향력을 미친 작품으로 손꼽히게 되었다.
에밀 시뇰, 〈베를리오즈의 초상화〉, 1832년
ⓒ Émile Signol / Wikimedia Commons | Public Domain
이 작품은 “어느 예술가의 삶”이라는 2부작으로 구상된 것이었다. 이 작품의 속편 격인 〈렐리오, 생활로의 복귀〉는 1832년에 완성되었는데, 이 해에 베를리오즈는 꿈에도 그리던 해리엣 스미드슨과 재회할 수 있었고 결국 이듬해에는 결혼에까지 이르게 된다. 우여곡절 끝에 결합한 두 사람이었지만, 이들의 사랑은 오래 가지 못해서 결국 10년 만에 파경에 이르게 된다.
오필리어로 분한 해리엇 스미드슨
ⓒ Wikimedia Commons | Public Domain
혁신과 대담한 시도로 베를리오즈 양식을 만들다
이 작품이 완성되기 2년 전인 1828년, 베토벤의 악보들이 프랑스에서 출판되기 시작했다. 베를리오즈는 베토벤의 교향곡들에 깊은 감명을 받았고, 실제로 〈환상교향곡〉에서도 베토벤의 영향이 곳곳에서 나타난다. 그러나 이 작품은 단순히 베토벤의 영향만으로 탄생한 것은 아니다. 이전부터 심취했던 프랑스 음악의 전통 역시 이 작품 속에 면면히 살아 있다.
이처럼 복합적인 음악적 전통 속에서 베를리오즈만의 독창성이 탄생하게 되었다. 교향곡의 형식 속에서 하나의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식과, 이를 위해 도입된 고정악장(이데 픽스)이라는 혁신적인 아이디어는 이후 세대의 작곡가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특히 고정악상의 아이디어는 바그너의 유도동기(라이트모티브)로 이어졌고 리스트의 순환형식 개념의 단초가 되었다. 형식에 있어서도 파격적인 시도들을 보여준다. 베토벤과 마찬가지로 5악장의 형태를 취하지만, 관습적인 비율보다 훨씬 확대된 서주라던가 축소된 발전부, 비대칭적인 주제선율 등 이제까지 접해보지 못한 새로운 음악적 구조를 시도하고 있다.
이 작품은 또한 오케스트레이션에 있어서도 전대미문의 대담한 시도들을 보여준다. 관습적인 2관 편성을 기본으로 하고 있지만, 필요에 따라 편성을 변형하거나 확대하였다. 또한 음역과 음색의 특징을 최대한으로 활용하여 음악적 내러티브를 효과적으로 이끌어간다. 주법의 변화나 악기의 배치 등을 통해 그가 의도한 음악적 상징들을 절묘하게 배치하고 있다. 〈환상교향곡〉에서 보여준 혁신적인 오케스트레이션은 이후 많은 작곡가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작품의 구성 및 특징
제1악장 ‘꿈. 열정’(라르고 - 알레그로 아지타토 에 아파시오나토 아사이, 4/4박자)
1악장은 사랑에 빠진 예술가가 느끼는 몽환적인 우울함에서부터 열정과 질투, 눈물과 종교적인 위안에 이르는 다채로운 감정들을 담아내고 있다. 불안과 동경을 담은 목관선율이 서주의 오프닝을 열고, 곧이어 약음기를 낀 바이올린 성부가 초조한 심정을 표현한다. 현악 성부는 점차 확대되면서 흥분을 고조시키고, 갑작스럽게 C장조의 밝은 선율을 제시하면서 서주를 마무리한다. 무려 6분이나 이어지는 장대한 서주는 당시로서는 매우 이례적인 규모였다.
알레그로 부분이 이어지면서 본격적으로 제시부가 시작된다. 플루트와 바이올린이 우아한 1주제를 제시하는데, 이 선율은 모든 악장에 걸쳐 사랑하는 여인을 상징하는 고정악상으로 사용된다. 베를리오즈는 의도적으로 대칭적인 선율을 회피하면서 독창적인 느낌을 주려고 했다.
제시부의 후반부에서 2주제가 등장하지만 곧 발전부로 이어지면서 그 비중이 약화되어 있다. 발전부 역시 1주제의 단편들을 중심으로만 전개되면서 2주제의 역할이 거의 드러나지 않으며, 발전부 자체도 매우 축소되어 있다. 베를리오즈는 베토벤 식의 ‘주제의 발전’ 개념을 의도적으로 거부하고 자신만의 진행을 보여준다. 재현부에서는 1주제가 플루트-오보에-클라리넷 순으로 반복되고, 뒤따라 열광적인 코다로 절정에 이르렀다가 아멘종지로 경건하게 악장을 끝맺는다.
제2악장 ‘무도회’(왈츠. 알레그로 논 트로포, 3/8박자)
베를리오즈는 이 작품에서 최초로 두 번째 악장에 왈츠양식을 도입함으로써 형식의 파격을 꾀하였다. 현 성부의 트레몰로와 하프의 아르페지오가 신비로운 도입부를 연출한다. 두 개의 하프가 모두 사용된 유일한 악장으로, 베를리오즈는 하프의 음색적 특징을 강조함으로써 무도회의 감각적인 즐거움과 사랑하는 여인의 아름다움을 효과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곧이어 왈츠 리듬의 화려한 선율이 등장하여 무도회의 시작을 알린다. 왈츠 선율이 흐르는 동안 플루트와 오보에가 두 차례에 걸쳐 고정 악상을 연주하여 사랑하는 여인의 춤추는 모습을 연상케 한다.
제3악장 ‘들판의 풍경’(아다지오, 6/8박자)
여름 저녁 들판에서 상념에 빠진 예술가의 모습을 그리고 있는 이 악장은 희망과 불안이 교차하는 주인공의 감정을 탁월한 오케스트레이션으로 표현하고 있다. 잉글리시 호른과 오보에가 번갈아 제시되면서, 들판에서 두 명의 양치기가 부는 피리소리를 묘사한다. 베를리오즈는 오보에 주자가 무대 뒤에서 선율을 연주할 것을 지시하여, 두 목동이 서로 멀리 떨어져 있음을 음향적으로 연출하였다. 두 목동의 피리소리에 이어, 플루트와 바이올린에서 주제선율을 연주한다.
현악 성부가 격렬하게 하행하면서 주인공의 불안한 감정을 묘사하는 중에 플루트와 오보에가 고정 악상을 연주하여 연인에 대한 불안감이 증폭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다시 잉글리시 호른이 목동의 피리소리를 제시하지만, 이제는 오보에가 이에 답해주지 않는다. 마침내 4개의 팀파니가 천둥소리를 연주하면서 고독과 절망 속에 악장을 마무리한다.
제4악장 ‘단두대로의 행진’(알레그로 논 트로포, 4/4박자)
절망에 빠진 예술가는 아편을 먹고 자살을 시도하지만 죽음에 실패하고 혼수상태에 빠진다. 꿈속에서 주인공은 사랑하는 여인을 죽이고 사형을 선고받는다. 단두대로 향하는 주인공의 행진을 묘사하듯 팀파니의 연타로 악장이 시작된다. 드디어 호른이 행진의 시작을 알리고, 팀파니의 연타가 점차 고조되는 가운데 첼로와 베이스가 단두대로 향하는 주인공의 무거운 발걸음을 묘사한다.
뒤따르는 선율은 베를리오즈의 미완성 오페라 〈종교재판관〉에서 가져온 것으로, 처형을 앞둔 주인공의 심경을 절묘하게 표현하고 있다. 두 개의 주제선율이 교차되면서 점차 절정으로 치닫다가, 클라리넷 독주가 고정악상을 짧게 제시하면서 사형을 앞둔 주인공의 회상을 그린다. 곧바로 팀파니와 심벌이 강렬하게 제시되면서 처형장면을 묘사하고, 이어지는 느린 피치카토 음형이 바닥에 떨어진 머리를 생생하게 그린다. 처형의 장면은 활기찬 장조의 금관선율과 드럼의 연타로 마무리된다.
제5악장 ‘마녀들의 밤의 꿈’(라르고 - 알레그로, 4/4박자)
주인공의 장례식에 모여든 마녀들의 축제를 그린 이 악장은 1악장보다도 확대된 규모의 긴 서주로 시작된다. 느린 4/4박자로 시작한 서주는 현악성부의 트레몰로와 피치카토, 갑작스러운 강약변화 등으로 불길하고 음산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라르고에 이어지는 알레그로 부분에서는 6/6박자로 박자가 변화되고 클라리넷이 기괴하게 변형된 고정악상을 연주한다.
짧은 꾸밈음으로 인해 마치 닭의 울음소리와도 같은 경박한 형태로 변형된 고정악상은, 이전의 우아함을 잃어버린 연인의 모습을 표현하고 있다. 다시 4/4박자와 6/8박자로 박자가 빠르게 변화하면서 클라리넷이 계속 고정악상을 반복한다. 클라리넷 특유의 음향이 독특한 음형과 어우러져 변해 버린 연인의 마녀 같은 모습을 강조한다. 이윽고 종이 울리는 소리와 함께 마녀들의 윤무가 시작된다.
긴 서주에 이어, 네 대의 바순과 두 대의 튜바가 장엄하게 ‘분노의 날’의 선율을 연주하면서 드디어 제시부가 시작된다. 장엄한 ‘분노의 날’에 이어 현악성부가 다시 마녀들의 윤무 선율을 제시한다. 기괴한 푸가양식의 마녀들의 윤무와 장엄한 ‘분노의 날’이 함께 어우러지면서 열광과 혼란이 점점 더 고조된다. 콜 레뇨(col legno: 활등으로 현을 켜는 주법)으로 연주하는 현의 음향이 이 기괴한 장면을 더욱 강조하면서 악장을 마무리한다.
글 출처 : DAUM 백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