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natic(2012) / Heart
1970~1980년대를 대표했던 여성 록의 기수, 앤-낸시 윌슨(Ann-Nancy Wilson), 두 자매가 이끌어온 집념의 밴드 하트(Heart)의 2012년 최신작, [Fanatic] 2012년의 대한민국 홍대의 여러 인디 록 밴드에서도 여성 멤버들이 보컬리스트는 물론 기타, 베이스, 키보드, 드럼에 이르기까지 주요 멤버로 활약할 정도로, 이제 여성이 록 음악을 연주하는 것은 절대로 낯선 풍경이 아니다. 서구 대중음악 씬에서도 1990년대 이후부터는 수없이 많은 여성 싱어송라이터들이 자신들의 언어로 록 음악을 택했고, 이제 여성이 프론트 우먼, 또는 밴드에서 음악의 중심, 즉, 작사/작곡의 중심에 서서 활약하는 밴드들은 부지기수가 되었다. 그러나 40년 전만 해도 여성 뮤지션들이 남성 중심의 록계에 뛰어들어 자신들의 지분을 갖고 활약한다는 것은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었다. 물론 1970년대 이전에도 재니스 조플린(Janis Joplin)과 그레이스 슬릭(Grace Slick)과 같은 여걸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1970년대로 넘어오면서 록 씬의 주류가 블루스/사이키델릭 사운드보다는 더욱 강한 하드 록/헤비메틀로 이동하자 다시 록계에서 여성 뮤지션들의 활약은 위축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 가운데에도 몇몇 여성 뮤지션들은 남성들에게 뒤지지 않는 그들만의 파워 속에 여성 특유의 섬세함을 배합해 그 견고한 벽을 뚫고 대중의 주목을 받았다. 그 가운데 가장 선봉에 섰던 두 명의 여성 록커들이 바로 이 앨범의 주인공인 하트(Heart)의 영원한 안방마님들인 앤 윌슨(Ann Wilson), 낸시 윌슨(Nancy Wilson) 자매였다. 한 명은 보컬리스트로서, 한 명은 작곡에도 참여하는 싱어송라이터이자 기타리스트로서, 두 자매가 1970년대 데뷔 초기에 보여준 뮤지션으로서의 카리스마는 이후 등장하는 하드 록 씬의 여성 뮤지션들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 특히 그들의 초기 음악 속에서 두 자매 스스로도 가장 큰 영감을 얻었다고 밝힌, 그리고 현재까지도 그들 음악의 뿌리 속에 들어있는 레드 제플린(Led Zeppelin)의 영향력은 그들의 음악을 설명할 때 중요한 키워드가 된다. (실제로 앤 윌슨은 한동안 ‘여성 로버트 플랜트’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레드 제플린이 외형적으로는 직선적인 하드 록의 전형을 선사한 것으로 기억되지만 그들의 음악 속에는 분명 진한 블루스와 포크 록의 감성이 녹아 있었던 것처럼, 하트의 음악들도 1970년대의 음악들에서는 그 특색이 가장 두드러졌기 때문이었다. 물론 하트는 1970년대 말의 슬럼프를 딛고 1980년대 주류 팝 씬에서 제 2의 전성기를 보내던 무렵에는 그 초기의 특색을 잃어버렸던 것처럼 기억될 수도 있다. 그들의 1970년대는 잘 모른채 1980년대의 히트곡인 ‘These Dreams’(1985)나 ‘‘Alone’(1987)과 같은 팝/록 발라드, 그리고 그 당시의 히트 앨범들만으로 하트를 기억한다면 당연한 추론이자 귀결이다. 그러나 헤비메틀 씬이 대중화를 일으키기 시작하기 전, 이 당시 록 밴드들이 주류에서 생존하는 데 있어 신시사이저의 적극적 활용, 그리고 대중적 히트곡을 위한 주류 작곡가들과의 협업과 같은 명제는 피하기 힘든 부분이기도 했다. 어쩌면 그런 메이저 레이블의 압박이라는 조건 속에서도 나름 팝/록의 근간을 제대로 지켰던 음반을 냈다는 것이 오히려 다행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그래서 이제 얼터너티브 록이 다른 모든 록 장르를 ‘구식처럼’ 만들었던 시대가 지나가고, 다양한 록 장르들이 이젠 주류부터 인디까지 고유의 개성을 지키며 각자의 생존법을 모색하는 2010년대에 그들이 지난 앨범 [Red Velvet Car](2010)로 자신들의 생존과 음악적 기개가 저물지 않았음을 보였을 때, 미국 음악 팬들은 빌보드 앨범 차트 10위 등장이라는 화답으로 그 복귀를 반겨주었던 것이다. 비록 우리는 한동안 하트를 잊고 있었는지 모르지만, 미국에서는 하트의 위상은 그만큼 클래식 록, 올드 팝 팬들에게 절대적이었음을 다시금 확인시켜준 순간이었다. 40년 가까이 미국 록 씬에서 두 번의 전성기와 함께 그 이름을 지켰던 하트의 음악 여정 물론 하트의 역사가 두 자매가 들어오면서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은 맞지만, 이 밴드의 전신이었던 디 아미(The Army)는 사실 1963년에 워싱턴 주에서 처음 결성된 팀이었다. 이 밴드는 이름을 호커스 포커스(Hocus Pocus), 화이트 하트(White Heart) 등으로 개명해 활동하다가 결국 1970년대 하트로 밴드 이름을 줄이면서 새 보컬리스트를 뽑는 오디션을 실시했다. 여기에 시애틀에서 청소년기를 보내고 프로 보컬리스트가 되기로 마음을 먹었던 앤 윌슨이 응해 최종 선발된 것이 현재 우리가 아는 하트의 진정한 출발점이라 봐도 무방하다. 앤은 밴드 가입 후 당시 기타리스트였던 마이크 피셔(Mike Fisher)와 사랑에 빠졌고, 마이크가 베트남전 군 징집을 피하기 위해 국경을 넘어 캐나다로 도피하자 앤이 나머지 멤버들을 설득해 아예 밴드의 활동 근거지를 밴쿠버로 옮겨버렸다. 이때까지도 아직 고등학교를 졸업하지 못했던 이 때, 그들의 활동을 지켜봤던 프로듀서 마이크 플리커(Mike Flicker)가 데모 테이프를 만드는 것을 지원해주면서 그는 결국 밴드의 전담 프로듀서로 하트의 활동을 지원해 주기 시작했다. 결국 1975년 머쉬룸/캐피톨(Mushroom./Capitol)레이블과 계약을 맺고서 첫 앨범 [Dreamboat Annie](1976)을 제작했고, 이 앨범에서 ‘Crazy on you’, ‘Magic man’, ‘Dreamboat Annie’가 연이어 히트를 거두면서 단숨에 캐나다를 넘어 고국인 미국 시장에서까지 스타덤에 올랐다. 강력하지만 멜로디가 강조된 하드 록 트랙들과 컨트리 포크의 감성도 포함된 음악들이 섞인 이 앨범은 현재까지도 음악적으로 그들을 거론할 때 빠지지 않는 명반이자 1970년대 록의 명반으로 평가받고 있다. (캐나다에서 더블 플래티넘, 미국에서 플래티넘 디스크를 기록했다.) 1년 후 레이블을 소니뮤직(당시는 CBS) 산하 포트레이트(Portrait)로 옮겨 발표한 2집 [Little Queen](1977) 역시 그들의 성공을 계속 이어주었는데, 그들의 곡 가운데 가장 헤비한 리프를 가진 싱글이었던 ‘Barracuda’와 ‘Little Queen’ 등이 히트를 거두며 미국 내에서만 3백만 장 이상을 파는 대 히트를 거뒀다. 하지만 팝 음악계에는 한창 디스코의 물결이 밀려들고 있었고, 모든 클래식 록 밴드들이 그 때문에 휘청대던 시기에 하트는 계속 기존 남성 멤버들의 탈퇴와 새 멤버들의 가입이 이어지는 어지러운 내부 사정을 겪었다. 이전 레이블이 그들이 남긴 음원으로 만든 애매했던 3집 [Magazine](1978), 싱글 ‘Straight On’과 타이틀 트랙이 준수한 히트를 거두었던 4집 [Dog & Butterfly](1978)까지는 그래도 사정이 좋았다. 하지만 1980년대로 넘어오면서 발표한 5집 [Bebe Le Strange]는 싱글 ‘Even It Up’과 골드 레코드 히트에 그쳤고, 1981년에 발표한 첫 라이브 앨범 [Greatest Hits Live]에 이어 내놓은 두 장의 앨범들 ? [Private Audition](1982), [Passionworks](1983)은 각각 싱글이었던 ‘This Man Is Mine’과 ‘How Can I Refuse’ 정도를 빼고는 그리 좋은 반응을 얻지 못했다. 하지만 그것은 단지 실패의 기간으로만 치부될 수는 없었던 시간이었다. 83년 앨범부터 레코딩에 참여한 새 멤버 두 사람이 밴드의 색깔에 좀 더 메인스트림 록의 기운을 넣었기 때문이었다. 당시 새 베이시스트와 드러머가 된 마크 안데스(Mark Andes)와 데니 카마시(Denny Carmassi)는 각각 팝/록 밴드 파이어폴(Firefall)과 몬트로즈(Montrose)에서 활약했던 멤버들로, 더욱 안정되고 스트레이트한 1980년대 주류 AOR분위기의 사운드로 밴드의 음악을 바꿔 놓았다. 포트레이트에서 방출된 후 다시 첫 번째 앨범을 냈던 캐피톨 레이블로 돌아간 하트는 ‘심플하고 새로운 시작’이라는 의미로 8집 [Heart](1985)를 셀프 타이틀로 발표했다. 바로 여기서부터 그들의 제2의 전성기가 펼쳐졌다. 그들은 다른 주류 록 밴드들과 마찬가지로 좀 더 적극적으로 MTV를 공략했다. 당대의 뉴 웨이브/신스 팝 밴드들의 원색적 분위기를 뮤직비디오에 가미했고, 사운드 역시 로킹함은 리듬 파트의 탄탄함으로 유지하되 건반 사운드를 강조하여 싱글 트랙들에선 과거와는 완전 다른 분위기의 하트를 연출한 것이다. ‘What about love(10위)’, ‘Never(4위)’ 등 오랜만에 그들에게서 Top 10 싱글들이 터져나왔고, 세 번째 싱글이자 낸시가 리드 보컬을 맡았던 정말 부드러운 록 발라드 ‘These dreams’가 최초로 밴드에게 빌보드 Hot 100 1위의 영예를 안겨주면서 그들은 확실하게 후배 팝 아티스트들 사이에서 화려한 메인스트림 복귀에 성공했다. 이어서 발표된 두 장의 앨범들 [Bad Animals](1987), [Brigade](1990) 은 그들의 당대의 인기를 지속하게 해준 작품들이었고, 전자에 담긴 록 발라드 ‘Alone’이 싱글 차트 3주 1위와 함께 세계적 히트를 거두면서 지명도 역시 최고조로 올라갔다. 후자에서도 ‘All I Wanna Do Is Make Love to You(당시 국내 심의를 통과하지 못해 라이선스 음반에 담기지 못했으나, 라디오 방송에서는 꾸준히 소개되었다는 것은 아직도 미스터리로 남아있음)’가 2위를 기록하며 팝 메탈/헤비메탈의 중흥기였던 1990년대 벽두까지 그들의 인기도 지속되는 것 같았다. 두 자매와 밴드에게는 통산 14번째 정규 앨범이 되는 새 앨범 [Fanatic]은 지난 앨범 발표 후 가진 투어 속에서 그들이 묵었던 호텔 방에서, 그리고 캘리포니아 지역의 여러 스튜디오를 거치며 그래미를 수상한 바 있는 프로듀서 벤 밍크(Ben Mink)의 손으로 다듬어졌다. 수록곡은 요새 대부분의 새 앨범의 분량을 생각한다면 달랑 10곡에 불과할 지 모르지만, 이 음반은 1990년대를 끝으로 하트에 대한 정보를 접하지 못했거나, 2000년대 이후의 그들의 음반을 전혀 듣지 못했던 음악 팬들에게는 엄청난 충격을 안겨줄 작품이다. 물론 여기서 ‘충격’이라 함은 ‘긍정적 충격’을 말한다. 그들의 1970년대 음악적 뿌리인 포크 록과 블루스에 기반한 하드 록에 충실한, 그러나 자신들이 나이를 먹었음을 잊지 않는 자연스러움을 보여준다. 그리고 그 어느 때보다 사운드 면에서 ‘날것과 같은 거친 매력’을 선사한다. 후배 밴드들의 개러지 무브먼트를 통한 선배들의 트리뷰트와는 질적으로 다른 진짜 ‘클래시컬한 하드 록’이 무엇인지 목소리와 음악으로 시범을 보인다, 인트로부터 범상치 않은 타이틀 트랙이자 첫 곡 ‘Fanatic’은 사랑과 예술, 진실, 그리고 믿음 등 그들이 마음을 두었던 일들에 대해서는 항상 ‘광적이었던’ 윌슨 자매 자신들의 이야기를 그린 곡이라고 인터뷰를 통해 밝힌 바 있다. 모두의 예상을 깨는 이런 블루지 리프 중심의 파워풀한 하드 록 트랙을 2012년에 듣는다는 것도 반갑지만, 그리 과거에 뒤처지지 않는 파워를 선보이는 앤의 보컬 역시 매력적이다. 군인 가정에서 태어난 자신들의 기억을 바탕으로 아버지의 시선으로 전쟁에서 귀향한 군인의 마음을 그려낸 ‘Dear Old America’는 로버트 플랜트나 지미 페이지가 듣는다고 해도 만족할 만한 스트링과 기타-드럼 연주의 조화가 인상적이다. 마치 하트가 제작한 제플린의 ‘Kashimir’의 트리뷰트이자 속편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자신들의 투어 버스 운전사의 깡마르고 노쇠한 모습을 보고 아이디어를 얻었다는 ‘Skin And Bones’는 루츠/블루스 록의 기초 위에서 강한 기타 사운드와 드럼 비트의 거친 매력이 잘 살아있는 매력적인 트랙이며, 일렉트로닉적 감각을 살짝 더했지만, 사운드와 비트는 헤비 록에 가까운 응집력을 보여주는 ‘Million Miles’, 다시 한 번 제플린의 향기를 강하게 내뿜으며 파워 코드 연주와 스트링의 격정을 동시에 들려주는 드라마틱한 트랙 ‘Mashallah’, (마치 1980년대 어떤 한국 헤비 록 밴드의 음반에 쓰여있었던 문구에 빗대어 말하자면) ‘블랙 키스(The Black Keys)와 화이트 스트라입스(The White Stripes)를 지옥으로 보내주마!’를 외치는 것 같은 원초적 하드 록의 에너지를 들려주는 ’59 Church’까지 앨범의 하드한 트랙들은 그간 쉽게 맛보지 못했던 밴드의 초창기의 마력을 21세기 버전으로 선사한다. 글 출처 : 김성환 (Music Journalist ? Hottracks/Paranoid/100Beat Contributor) 2012. 9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