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RODUCTION 1. Piano Concerto No.1 in bb minor. Op.23. 작품의 배경 및 개요 차이코프스키가 남긴 피아노의 관현악을 위한 작품은 3곡의 협주곡과 ‘협주적 환상곡’ Op.56으로 모두 4곡이다. 이 중 협주곡 3번은 1악장의 미완성곡이다. 이런 작품 중에서 가장 뛰어난 작품이라면 역시 협주곡 1번으로 고금의 여러 피아노 협주곡 중에서도 돋보이는 명곡이 아닐 수 없고, 특히 뛰어난 연주 효과로 인해 연주회에서도 가장 인기 높은 레퍼토리의 하나로 자리한다. 또한 차이코프스키 개인으로서는 일약 세계적인 명성을 가져다 준 작품이기도 하다. 작곡은 1874년 10월 그의 나이 34세 때에 착수하였는데, 11월 10일 동생 모데스트(Modest Tchaikovsky, 1850~1916)에게 보낸 편지에서 ‘피아노 협주곡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라는 말을 남기고 있다. 곡은 모스크바 음악원 초대 원장이자 당대 대피아니스트인 니콜라이 루빈스타인(Nikolay Rubinstein, 1835~1881)에게 헌정하려고 하였다. 그래서 니콜라이를 놀래 주려고 작곡 사실을 숨겼고 12월 24일에 먼저 1악장을 들려주고 의견을 물었다. 이 자리에는 음악원 동료인 후버트(Nikolay Hubert(Gubert), 1840~1888)도 참석하였다. 그러나 루빈스타인은 ‘곡이 독창성이 없고 졸렬하고 서투른 것이라 연주가 불가능하다’라는 악의에 찬 평을 하였다. 또한 산술 더 떠 자신의 뜻대로 고친다면 초연 할 수도 있다고 하여 차이코프스키를 매우 화나게 만들었다. 한편 나중에 차이코프스키는 이 일에 대해 메크 부인에게 편지를 보내어 다음 같아 밝히고 있다.
“1악장 연주 후 불쾌한 침묵이 흐르고 나는 어떠냐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루빈스타인은 마구 지껄이기 시작했는데, 이 곡은 연주가 불가능하며 그럴 가치도 없는 것이다. 작곡 자체도 서툴러서 쓸 만한 곳은 2, 3페이지에 불과하다. 나는 한마디도 대꾸하지 않고 2층으로 올라가 버렸습니다.
나는 분노와 흥분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조금 있다가 루빈스타인이 올라와 현재로는 연주가 불가능하니 자기가 지적해 주는 몇 부분을 고치면 연주해도 좋겠다고 말했습니다. 나는 이에 음표 하나라도 고칠 수 없고 그대로 악보를 인쇄하겠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차이코프스키는 다음 해 1875년 2월 전곡을 완성하여 제자이며 피아노의 명수인 타네예프(Sergey Taneyev, 1856~1915)에게 헌정하려 하였으나 다시 뜻을 바꾸어 뵐로(Hans von Bulow, 1830~1894)에게 초연을 부탁한다. 뷜로는 지휘자로서 뿐만 아니라 피아니스트로서도 유명하였고 이미 이 곡을 연주하며 높게 평가하고 있던 터였다. 또한 뷜로가 연주하는 것에 감명 받은 일도 있어 흔쾌히 헌정을 하게 된다. 이에 뷜로는 독창적인 걸작이라 칭송하며 1875년 10월 25일 러시아가 아닌 미국 보스턴에서 랭(Benjamin Johnson Lang, 1837~1909, 미국)의 지휘와 자신의 피아노 연주로 초연하여 대단한 성공을 거두었다. 특히 연주 자체도 훌륭하여 마지막 악장을 두 번이나 연주할 정도였다고 한다. 그리고 일주일 뒤인 11월 1일 페테르부르크에서 크로스(Gustav Kross)의 피아노와 나프라브니크(Eduard Napravnik, 1839~1916, 체코) 지휘로 러시아 초연이 이루어졌다. 그리고 21일에는 모스크바에서 루빈스타인의 지휘와 타네예프의 피아노로 연주되었다. 이렇게 루빈스타인도 이 협주곡의 가치를 인정하였고 1878년 파리에서는 자신이 직접 연주하여 크게 호평 받게 되었던 것이다. 그리고는 혹평을 한 것을 사과하고는 두 사람은 우정을 다시 되찾게 된다. 훗날 차이코프스키는 이런 루빈스타인이 파리에서 객사하자 <위대한 예술가의 추억>이라는 피아노 3중주곡을 남기기도 하였다. 한편 루빈스타인이 혹평을 한 이유는 피아노 작곡이 대선배인 자신에게 차이코프스키가 조언을 구하지 않았던 것이라고 토로하고 있다. 그리고 루빈스타인 사후인 1888년 차이코프스키는 곡을 손질하여 더욱 더 완벽한 곡으로 완성시킨다. 그래서 뷜로가 초연 한 악보는 1874-75년판이고 지금 우리가 듣는 것은 1888년판이 된다. 이것은 마치 두 음악가의 자존심 대결 같은 것이었는데, 결국은 루빈스타인의 지적이 맞는 것이었고 차이코프스키는 그런 지적을 받아들여 우정을 되찾음과 동시에 곡의 완성도를 더욱 높였던 것이다. 비록 루비스타인이 죽은 지 7년 뒤였지만······. 이렇듯 우여곡절 끝에 탄생한 역작으로 피아노와 관현악이 혼연일체가 되어 자아내는 러시아 특유의 감미로운 선율로 절대저거 지지를 얻고 있다. 특히 1악장 시작부의 혼의 울림이 아주 인상적이며 3악장의 압도적인 피날레는 카타르시스를 느낄 만큼 걸출한 것이라 하겠다. 곡은 세련되어 있지만 유럽적인 화려한 것은 아니며 러시아적인 것과 슬라브의 중후한 선과 색채적인 관현악이 잘 나타나 있다. 루빈스타인의 지적대로 다소 연주 상의 난점을 가지고 있어 뛰어난 기교가 요구되며 특히 3악장이 더욱 그러한다. 또한 특징은 관현악의 웅대한 울림과 러시아적인 정감의 표출 그리고 화려한 피아노의 독주인데 친근하면서도 강렬한 슬라브의 정취를 전해 주는 것이라 하겠다.
출처 : 불후의 클래식(허재, 책과 음악) 중에서 작품의 구성 및 특징 제1악장 : Allegro non troppo e molto maestoso(너무 빠르지 않게 그리고 매우 웅장하게) 3/4박자, 서주를 가지는 자유로운 소나타형식.
A. 도입부 4대의 호른에 의해 제시되는 첫 하행의 세 음은 여린내기이다. 처음의 제시부 6마디는 b플랫단조이며 피아노는 서주의 제시가 끝나는 6째 마디에서부터 등장한다. 여기서부터는 D플랫장조로 전환하여 아름답고 서정적인 서주 주제가 바이얼린과 첼로에 의해 나타난다. 피아노독주는 두텁게 겹친 화음을 계속해서 옥타브로 연주하는데, 세 개씩 연주되는 8분음표의 마지막 하나는 두 옥타브를 점프하게 되어 있어 연주하는데에 있어 상당히 곤란한 점으로 작용한다. 26번째마디부터는 현악기군의 피치카토 위에 피아노 독주가 제 1주제를 부점으표로 변주하여 나타나고 36마디부터는 독주 카덴짜로 변화하여 몇 가지 화려한 피규레이션을 연주하고 현악기의 피치카토가 도입부의 테마를 흘리다가 다시 독주악기와 오케스트라의 튜티로 서주의 테마를 연주한 후 조용히 끝마친다. 이 서주의 주제는 곡 전체를 통해 다시는 나타나지 않는다. B. 주부 - Allegro con spirito, 4/4박자 110마디부터는 b플랫단조로 전개되며, 피아노가 쓸쓸한 느낌의 주제를 튕기듯이 연주한다. 이 주제는 차이코프스키가 카멘카에 갔을 때 거리의 눈먼 거지들이 부르던 노래를 스케치 해 둔 것에서 유래한 것이라고 한다. 이 테마는 피아노와 플루트, 클라리넷을 중심으로 한 목관악기군에 의해 전개되고 피아노의 화려한 기교가 등장한다. 제 2주제는 193마디에서부터 클라리넷과 바순에 의해 poco meno mosso로 나타난다. 조성은 A플랫장조., 196마디째부터는 현약기가 약음기를 붙이고 주 선율을 연주한다. 피아노는 2주제를 하강음형으로 변주하여 복잡하게 발전해 나가고, 237번째마디에서부터 곡상은 크게 크레센도되면서 기교적이고 극적인 토카타풍의 경과부를 통해 새로운 악상으로 돌입하게 된다. 1악장의 의례적인 카덴짜는 540마디에서 시작된다. 상당히 규모가 큰 것이기는 하지만 악장 전체에서 요구되는 기교와 피아니스틱한 효과가 매우 큰 탓인지 인상적인 카덴짜라고는 할 수 없다. 카덴짜 이후의 종결부에 이르러서는 제 1주제와 제 2 주제가 혼합되어 계속 발전하게 되고 660마디째 부터 피아노의 웅장한 옥타브와 합께 힘차게 1악장을 마치게 된다. 소나타형식의 전개가 결코 허술한 것은 아니지만 악장의 규모가 워낙에 크고 서주의 강렬한 주제가 두 번 다시 등장하지 않는 까닭에 전체적으로 약간 산만하다는 느낌을 받기 쉬운데, 연주자가 악장 중간 중간에 놓여있는 유기적인 연결 고리를 잘 찾아서 균형잡힌 느낌을 잘 표현해야만 지루한 느낌을 받지 않을 수 있는 악장이기도 하다 제2악장 : Andate semplice (느리고 간결하게), 6/8박자, 세도막형식
처음에는 1악장의 긴박감과 열기를 식히듯이, 현악기군이 조심스럽게 D플랫장조의 피치카토를 연주한다. 뒤이어 플루트의 독주로 매우 소박하고 아름다운 2악장의 주제가 등장하며 역시 차갑고 단순한 선율로서 화려하고 장대한 1악장과 대조를 이룬다. 피아노는 13번째마디에서 풀루트의 악상을 이어받으면서 시작된다. 독주부의 화음은 종종 한 옥타브 하고도 두 음 반 이상까지 벌어지므로 듣기만큼 연주하기는 편하지 않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변주된 주제는 4도의 스타카토로 계속되다가 첼로에 의해 주제가 다시 연주된다. 이 부분의 피아노기교는 쇼팽의 op10-7번 연습곡을 쏙 빼닮았다. 주제의 연주는 다시 오보에가 떠맡게 되고 종지형과는 거리가 먼 화음에서 갑자기Prestissimo의 중간부로 돌입한다. 피아노는 장식음을 동반한 짤막한 터치로 연신 익살스럽고 경쾌하게 연주되고 프랑스 민요인 "즐겁게 춤추고 웃어라"를 모티브로 한 소박한 노래가 비올라와 첼로에 의해서 연주된다. 사실 이 부분은 곡 해설을 읽으면서 프랑스민요라는 것을 알았지만 그 전에는 계속 러시아 민요를 이용한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2악장은 듣기에 부담스럽지 않은 즐거운 악장이기는 하지만 연주에 사용되는 기교는 참신하고 고도의 것으로서 악장의 분위기에 어울리도록 연주하는 것은 매우 힘든 일이라고 한다. 굉장히 빠르게 진행되는 악상은 136마디째에서 양손이 교차하는 카덴짜로 돌입하고 pesante, Risoluto molto로서 다시 느린 주제로 돌아간다. 이번에는 피아노가 트릴을 동반하여 주제를 연주하고 바이얼린과 비올라가 뒤를 받친다. 마무리는 처음에 등장했던 플루트가 맡는다. 제3악장 : Allegro con fuoco (빠르고 격렬하게), 3/4박자 론도형식
작곡자 자신의 바이얼린협주곡과 마찬가지로 종악장은 러시아 농민의 춤곡을 소재로 한 거칠고 흥겨운 곡이다. 주제는 피아노에 의해 b플랫단조로 제시되며 유쾌하고 리드미컬한 러시아의 향토성이 아주 짙게 드러나 있다. 오케스트라의 튜티는 여기에 대응되는 주제를 포르티시모, G장조로 아주 '신나게'연주한다(33마디부터). 3악장의 생명은 바로 이 부주제를 얼마나 거칠고 생기 있게 표현하는가에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이후 피아노는 마치 러시아의 들을 휩쓰는 겨울바람을 묘사하는 듯 양손의 교차에 의한 스케일을 연주하고 곧바로 D플랫장조의 제 2주제가 바이얼린과 피아노에 의해 등장한다(57마디, 61마디째부터). 이 악장은 론도형식이지만 하나의 주제만이 반복되는 것이 아니라 이 두 개의 주제가 계속해서 반복되고 그 사이사이에 짤막한 경과부를 가지는 것으로서 약간 변칙적인 론도형식을 이루게 되는 것이다. 피아노는 한 옥타브간격을 두고 빠른 경과부를 연주하며 갑자기 1주제를 플루트가 트란퀼로로 연주하며 점차 긴장을 고조시키다가 현이 급격히 크레센도되면서 트레몰로를 연주하던 팀파니가 꽝! 하고 두들기면서, poco piu mosso, fff의 코다로 돌입한다. 피아노는 양손의 강렬하고 빠른 옥타브로 경과부 악상을 쳐올리며, 제 2주제를 오케스트라의 튜티와 피아노의 독주로 매우 웅장하게 연주하며 이 악장의 클라이막스를 형성한다. 종결부는 제 1주제를 소재로 하고 있으며 토카타풍의 화려한 독주기교를 과시하며 곡의 마무리로 치닫는다. 글 출처 : 클래식 명곡 대사전(이성삼, 세광음악출판사) 2. Ouverture Solennelle '1812', Op.49 1812년 9월, 나폴레옹 60만 대군이 모스크바 공격에 나섰지만 러시아 사람들이 모스크바를 초토화 시켜버림에 결국 나폴레옹 군대는 강추위와 굶주림 속에 완패를 당하고 겨우 3만 명의 패잔병이 파리로 돌아가게 된다. 이 곡은 러시아 군대의 승리를 그린 묘사음악으로 프랑스 국가 “마르세예즈”와 러시아 선율 4개가 나온다. 이 곡이 초연될 당시 대편성의 관현악이 동원되었는데 큰북 대신 포병대의 대포가 쏘아졌다는 얘기도 있다. 이 곡은 일종의 대규모적인 묘사음악이다. 1812년 나폴레옹이 60만 대군을 이끌고 모스크바를 침공하였으나, 러시아군과 추위와 기아로 인해 완전히 패퇴한다는 내용을 오케스트라로 묘사한 것이다.1789년 프랑스 대혁명 당시에 청년장교였던 나폴레옹 보나파르트는 점점 두각을 내밀어, 어느덧 만군을 호령하는 장군의 지위에 올랐고, 드디어는 세계제패를 꿈꾸게 되었다. 그리하여 멀리 이탈리아와 이집트에 원정하여 국민의 신망을 한 몸에 모았고, 그해 5월에는 국민투표에 의해 세습황제로 즉위하게 된다. 그렇게 하여 그의 전성기는 1812년까지 계속된다. 1812년 무적의 [대육군]을 자랑하는 나폴레옹군은 60만의 대군을 이끌고 러시아를 침공하여 동년 9월 14일에는 당당히 모스크바까지 점령하게 된다. 그러나 러시아 국민들은 모든 가옥을 불태우고 식량마저 없애 버리는 등 초토전술로 맞섰기 때문에 나폴레옹군은 잠자리와 식량에 고통을 받고 불과 1개월 후인 10월 19일에는 총퇴각을 시작한다. 혹심한 추위와 집요한 게릴라의 반격으로, 그토록 기세를 떨치던 대군도 뿔뿔히 흩어지고 간신히 프랑스의 니멘강에 이르렀을 때에는 불과 2만밖에 남지 않게 된다. 나폴레옹군은 실로 58만을 잃었고, 나폴레옹은 이 패전을 고비로 내리막길에 접어들어서 결국 몰락하게 된다. 이렇게 1812년이라는 해는 러시아 국민에게 있어서 기념할 만한 해가 된 것이다. 차이코프스키는 여기에 프랑스 국가가 된(1893년 국가로 됨) 「마르세예즈」와 러시아의 4개의 주제를 사용하고 있다. 이 러시아의 주제가 번갈아 가면서 「마르세예즈」를 침묵시키므로써 러시아의 승리를 묘사하도록 되어 있으며, 굉장히 화사한 곡이어서 일반에게 인기가 높다. 이 곡이 작곡된 동기에 대해서 2가지 설이 있다. 하나는 당시 모스크바 음악학교 교장이던 니콜라이 루빈스타인의 권유를 받고 작곡되었으며, 1882년 8월 8일 중앙 대사원의 재건을 축하하는 축전에서 공연되었다는 설이다. 큰북 부분도 포병이 실제로 대포를 쏘았다는 이야기도 있다. 또 하나는 니콜라이 루빈스타인이 권했다는 것은 같은데, 당시 모스크바에서 열린 산업예술박람회의 축전음악으로서 작곡되었다는 설이다. 그런데 그 산업예술박람회가 1882년 중앙 대사원 헌당식과 함께 열렸던 것을 감안하면 두 가지 다 맞는 것 같다. 차이코프스키는 이 곡에 대해서 별로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으며, 불과 10여일 남짓한 동안 작곡하였다. 사실 이 곡은 부분적으로 시끄럽고, 위대한 예술작품이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근 100년 동안 관객을 끌어모으는 인기 레퍼토리가 되어 왔다는 사실로 미루어 볼 때, 작곡가 자신의 평가보다는 뛰어난 작품임이 확실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