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RODUCTION 1. Symphony No.1 in D major (Titan) 작품의 배경 및 개요 근대의 음악가들 중에서 음악에 경계가 없다는 사실을 여실히 보여준 인물로 구스타프 말러(1860~1911)를 빼놓을 수 없습니다. 낭만주의 시대의 마지막에 자리하는 이 음악가는 자신의 몸속에 저장된 많은 음악을 교향곡 속으로 끌어들입니다. 다시 말해 음악가로서 그가 보여준 태도는 ‘경계의 벽’에 갇히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예컨대 그는 어린 시절에 들었던 군대의 행진음악, 아버지가 운영하던 선술집에서 흘러나오던 유행가 가락, 농부들의 소박한 춤곡, 거리를 떠도는 장돌뱅이들의 음악을 과감하게 자신의 교향곡 속으로 끌어들입니다. 그래서 저는 졸저 『아다지오 소스테누토』에서 말러를 일컬어 ‘혼종의 음악가’ ‘융합의 음악가’라고 표현하기도 했습니다. 물론 말러 이전에도 기존의 어떤 선율을 차용하는 작곡가들은 종종 있었습니다. 르네상스 시대부터 그랬습니다. 낭만시대의 작곡가들에게서도 이런 식의 차용 기법은 종종 발견됩니다. 하지만 말러처럼 세속적 선율을 교향곡 속으로 과감히 끌어들인 작곡가를 찾기는 어렵습니다. 그는 감수성이 활짝 열린 어린 시절에 들었던 음악들, 그래서 자신의 몸속에 저장돼 있던 그 익숙한 선율들을 ‘교향악적 재료’로 사용하는 데 주저함이 없었습니다. 바로 이 혼종성, 혹은 성속(聖俗의 구분 없음이야말로 그의 음악이 오늘날에도 우리에게 감동을 주는 이유 가운데 하나라고 봅니다. 말러는 흔히 낭만주의 교향곡의 마지막 방점을 찍은 작곡가로 기억되지요. 하지만 그와 동시에, 음악의 경계를 허물면서 모더니즘의 전망을 보여준 음악가라는 사실도 함께 기억돼야 할 겁니다. 베토벤이 고전과 낭만을 동시에 품었던 것처럼, 말러의 음악도 낭만과 현대를 함께 끌어안고 있습니다. 물론 그것은 완전히 종합되지 못한 채 때때로 분열의 양상으로, 다시 말해 혼란스러운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그것이 바로 당대의 보수주의자들에게 말러가 혹평 받았던 이유일 수 있겠지요. 하지만 지금은 어떤가요? 고상함과 퇴폐, 서정과 광기, 공포와 안식, 세속적 갈등과 영원함에 대한 갈망 같은 것들로 뒤범벅된 그의 음악에 많은 이들이 마음을 뺏기고 있습니다. 51세에 세상을 떠난 말러는 생전에 모두 9곡(‘대지의 노래’까지 포함하면 10곡)의 교향곡을 완성했지요. 첫 번째 교향곡을 구상한 것은 20대 중반부터라고 합니다. 본격적인 작곡은 1888년 초에 이뤄졌습니다. 앞에서 길게 설명한 ‘Bruder Martin’의 선율은 이 교향곡의 3악장 첫머리에서 들려옵니다. 한데 좀 이상합니다. 선율이 괴기스럽게 비틀려 있습니다. 원래 이 노래는 19세기 말 오스트리아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했을 뿐더러, 어린 아이들이 딱 좋아할 만한 유쾌하고 코믹한 돌림노래였지요. 하지만 말러의 교향곡에서는 완전히 다른 분위기를 풍깁니다. 팀파니가 둥둥거리는 가운데 콘트라베이스가 연주하는 선율이 음산하고 비감합니다. 말러는 애초에 D장조였던 선율을 d단조로 바꿔 괴기스러운 느낌의 장송(葬送)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는 그렇게 첫 번째 교향곡에서부터 희극을 비극으로 치환하는 독특한 패러디를 선보였습니다. 물론 지금의 감각으로 듣노라면 그 장송은 아름답게 들리기도 합니다. 하지만 당대에는 어땠을까요? 1889년 11월 부다페스트에서 말러의 지휘로 이 곡이 초연됐을 때, 청중이 느꼈을 당혹감이 충분히 짐작됩니다. 이런 상상을 해봅니다. 어린 시절의 말러는 선술집 아들이었습니다. 아버지 베른하르트가 군부대 근처에서 운영했던 술집에서는 매매춘도 일상사였다고 합니다. 게다가 어린 말러는 동생들이 잇따라 세상을 떠나는 것을 여러 차례 목격했지요. 말하자면 술 취한 남자와 여자들이 드나들던 선술집 문으로 동생들의 시신을 담은 관들이 떠나가는 장면을 지켜봐야 했습니다. 특히 바로 아래 동생이었던 에른스트의 죽음은 말러에게 오래도록 상처로 남았던 기억이었다고 합니다. 그 동생은 말러가 열다섯 살이었을 때 세상을 뜨지요. 아마 형제는 ‘Bruder Martin’을 함께 불렀을 겁니다. 어쩌면 말러는 류머티스 고열로 시달리던 동생의 머리맡에서 이 노래를 불러줬을 지도 모릅니다. 작품의 구성 및 특징 제1악장 Langsam, Schleppend, wie ein Naturlaut - Im Anfang sehr gemächlich (자연의 소리처럼 느리고, 쳐지게 - 처음에는 매우 서두르지 말고)
1악장은 느릿하게 막을 올립니다. ‘Langsam, Schleppend’(느리고 완만하게), ‘Wie ein Naturlaut-Im Anfang sehr gemachlich’(자연의 소리처럼, 매우 여유롭게)라는 지시어가 붙어 있지요. 현악기들이 A의 지속음을 길게 연주하면서 시작합니다. 서서히 먼동이 터오는 새벽의 느낌입니다. 멀리서 들려오는 팡파르, 또 꾀꼬리 같기도 하고 뻐꾸기 같기도 한 새소리들도 들려올 겁니다. 이어서 첼로가 말러의 가곡 ‘방황하는 젊은이의 노래’ 중 두번째 곡인 ‘아침 들판을 거닐 때’의 선율을 연주합니다. 매우 인상적인 주제입니다. 마지막에는 팀파니가 강렬하게 작열하면서 마침표를 찍습니다.
제2악장 Kräftig bewegt, doch nicht zu schnell (강한 움직임으로, 그러나 너무 빠르지 않게)
2악장에서는 빨라집니다. ‘Kraftig bewegt, doch nicht zu schnell’(힘차게 움직여서, 하지만 지나치게 빠르지 않게)입니다. 현악기들이 표정 있고 활기찬 화성을 연주하면서 시작합니다. 아주 리드미컬한 랜틀러 춤곡 풍의 선율이 펼쳐집니다. 이어서 음악이 잠시 멈추는 듯싶다가 목관과 바이올린이 주도하는 왈츠풍 선율로 넘어갑니다. 앞의 춤에 비해 좀더 세련된 도회풍의 춤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제3악장 Feierlich und gemessen, ohne zu schleppen (평온하게, 쳐짐 없이)
3악장은 ‘Feierlich und gemessen, ohne zu schleppen’(엄숙하고 장중하게, 그러나 느긋하지 않게).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콘트라베이스가 ‘Bruder Martin’을 선율을 장중하고 서글프게 연주하면서 시작합니다. 이어서 하프의 피치카토가 잠시 들려오다가 길거리 악사들이 연주하는 듯한 스타일의 음악이 펼쳐집니다. 약간 휘청거리는 듯한, 우스꽝스러우면서도 애잔한 분위기의 선율입니다. 인생의 희비극을 암시하는 것처럼 들리기도 하지요. 이어서 바이올린이 가곡 ‘방황하는 젊은이의 노래’ 중에서 네번째 곡인 ‘그녀의 푸른 눈동자’의 선율을 연주합니다. 젊은 말러의 서정성이 고스란히 전해오는 아름다운 멜로디입니다.
제4악장 Stürmisch bewegt (폭풍처럼 움직임)
4악장은 3악장에서 쉬지 않고 연결됩니다. ‘Sturmisch bewegt’(태풍처럼 움직여서). 거의 잦아드는 것처럼 3악장이 끝나자마자 폭풍 같은 총주가 터져 나옵니다. 말러가 왜 이 교향곡의 표제를 ‘거인’으로 지었는지를 여실히 느낄 수 있습니다. 연주시간 약 20분으로 교향곡 1번에서도 가장 긴 시간을 차지하는 악장입니다.
글 : 음악평론가 문학수(발췌) 2. 5 Rückert Lieder(뤼케르트의 시에 의한 다섯노래) 작품의 배경 및 개요 말러는 1901년 8월 10일에 완성한 '소년 북치기(Der Tamboursg' Sell)'을 끝으로 1888년부터 13년 간 그에게 네 곡의 교향곡과 24개의 가곡에 영감을 준 『어린이의 요술 불피리』를 떠나 1904년까지 3년 간은 뤼케르트 시에 몰두하게 된다. 말러 교향곡 1번부터 4번까지를 '뿔피리 교향곡'이라고 하듯이 교향곡 5, 6, 7번을 '뤼케르트 심포니'라고 한다. 그 이유는 이 교향곡이 작곡된 시기의 가곡과 깊은 연관이 있기 때문이다. 말러는 세 개의 교향곡 외에도 10곡의 뤼케르트 가곡을 작곡하였는데 5곡의 『뤼케르트 시에 붙인 5개의 가곡』과 『죽은 아이를 기리는 노래』의 5곡을 말한다. 가끔 『후기의 일곱 곡의 가곡』이라는 말을 볼 수가 있는데 이는 '죽은 곳', '소년 고수'이 2곡과 『뤼케르트 시에 붙인 5개의 가곡』을 말한다. 이는 1905년에 출판하면서 편의상 한 군으로 묶게 되면서 이름을 붙이게 된 것뿐이지 서로의 연관성으로 인한 것은 아니다. 『뤼케르트 시에 붙인 5개의 가곡』은 모두 오케스트라와 피아노 판이 있는데 '아름다움을 사랑한다면'이 오케스트라 판은 말러가 쓴 것이 아니고 Max Puttmann이 말러의 피아노 판을 편곡한 것이다. 이 가곡집이 초연은 1905년 1월 29일 빈에서 또 다른 뤼케르트 가곡인 『죽은 아이를 기리는 노래』와 함께 바리톤 Weidemann과 함께 말러가 지휘하는 오케스트라로 이루어졌다. 5곡의 정확한 작곡 날자가 모두 있지 않지만 1, 2, 3, 4곡은 1901년 여름에 완성된 것으로 보고 있고 5곡은 1902년 여름에 완성된 것으로 보고 있다. 곡의 내용이 서로 연관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죽은 아이를 기리는 노래』처럼 일정한 순서가 있는 것이 아니고 임의대로 불리워진다. 여기서 곡의 순서는 『후기의 일곱 곡의 가곡』에 실린 순서대로 하였다. 그러나 말러의 자필 악보, 초판에서는 이와는 다른 것으로 보아 이 5곡을 하나의 곡집으로 정리한 것 자체가 다분히 편의적인 일이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작품의 구성 및 특징 제5곡 Um Mitternacht (한 밤중에)
1901년 6, 7월 마이에르니히에서 작곡하였다. 94마디로 이루어져 있다. 오케스트라는 현이 사용되지 않고 관악기도 다른 곡에 비해서 규모가 크다. 그리고 후반부에는 특이하게 피아노가 반주에 합류한다. 아마도 말러의 관현악곡에서 피아노가 등장하는 곡은 이 곡이 유일하지 않을까 한다. 이 곡을 알마는 1920년 6울 13일에 아놀드 쇤베르크에게 헌정했다. 한밤중에 깊은 번뇌에 사로잡힌 주인공의 고통이 절실하게 표현되고 마지막에 이르러 자신의 무력함을 깨닫고 모든 것을 신에 의탁하여 비로소 얻게 되는 깨달음과 안도의 환희를 엄숙하게 노래하고 있다. 환희에 이르는 부분의 반주부가 앞의 부분과는 달리 장대하고 엄숙하게 진행된다. 노래의 주인공은 하늘의 별을 봐도, 허공을 바라 봐도 어떤 위안도 얻을 수 없고 오히려 마음속의 슬픔의 고동만 느끼며 인간의 무력함을 깨닫게 된다. 절망한 주인공이 삶과 죽음을 주관하는 하나님께 모든 것을 의탁하고 깨달음으로 해방된 영혼이 소리높이 신에게 찬미를 보내는 감동적인 클라이맥스를 갖는 노래이다. 가사의 내용은 간단하지만 상당히 종교적이다. 전반부의 절망감에 젖은 목소리가 후반부으 깨달음의 순간에 기쁨에 찬 외침이 이 곡의 백미이다. 제4곡 Ich bin der Welt abhanden gekommen (나는 세상에서 잊혀졌네)
1901년 8월 16일 작곡되었다. 67마디로 구성되었다. 이 노래는 번잡한 세상에서 멀리 떠나 자신만이 정적 안에서 살고자 하는 마음을 노래하고 있다. 꿈꾸듯 아름답고 신비로운 노래를 제5번 교향곡의 '아다지에토'나 『죽은 아이를 기리는 노래『의 제2곡 '이제야 알겠네, 왜 그리도 어둡게 타고 있었는가를' 과 관련이 보이는 노래이다. 세상을 멀리 떠나 마음의 평화 속에서 살고자 염원하는 말러의 심정이 깊게 스며드는 이 노래는 그 깊이와 품격으로 말러의 가곡 가운데 최고의 걸작품으로 평가받는다. 이 곡의 첫 반주부를 들으면 어디선가 많이 들어본 우리나라 가곡 같은 분위기다. 조용한 아침의 정적을 바라보는 듯한 느낌이다. 잠시 복잡한 마음을 추스르는데는 아주 좋은 음악이다. 동양의 은둔사상에 말러가 깊은 감명을 받은 것일까? 세상에서는 잊혀져도 상관없고 다만 자연 속에서 혼자 안식을 찾고싶다는 심정을 노래하고 있다. 발터가 빈 필과의 고별 공연에서 슈바르츠코프가 바로 이 노래를 불렀는데 발터도 이제는 세상에서 물러나 자신만의 안식을 찾고자 하는 마음이었을까? 글 출처 : Web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