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RODUCTION

Orchestre de Paris
Daniel Barenboim, conductor

Recording : Sofiensaal, Wien Deutsche Grammophon 1981

1. Bol‚ro

작품의 개요 및 배경

볼레로(Boléro)는 라벨이 전위적인 무용가인 루빈스타인(Ida Rubinstein)으로부터 스페인 풍의 무용에 쓸 음악을 위촉받고, 1928년 10월에 완성했다. 같은 11월 28일, 파리의 오페라 극장에서 루빈스타인 발레단에 의해 초연된 이 곡은 스페인 무곡이지만 리듬이나 템포가 본래의 볼레로와는 다르다. 3개의 색소폰이 사용되어 진기한 편성을 보이는데, 작은 북, 비올라, 첼로의 피치카토로 독특한 리듬을 새긴 후 C 장조의 밝고 쾌활한 주제가 이 리듬을 타고 들려온다. 이 주제는 두 도막 형식으로 악기를 바꾸면서 반복되고, 이 주제에 응답하는 듯한 형태로 또 하나의 주제가 연주된다. 즉 이 곡은 하나의 흐름결꼴과 두 개의 주제를 반복하는 것만으로 이루어지며, 가장 작은 소리에서 가장 큰 소리로 변화하는 '크레센도'(cresendo)만 사용되는 특이한 작품이다.

한 조의 주제가 이후는 동일한 리듬을 따르면서 조바꿈도 변주도 되지 않고 단지 악기 편성을 바꾸면서 8번 느리게 고조되고 반복된다. 전반부는 한결같은 유니즌(unison)으로 화성을 사용하지 않지만, 절묘한 관현악법으로 지루함으로 느낄 수 없는 곡이다. 악곡은 그대로 진행되고 끝 두 마디에 이르러 최초로 조바꿈이 일어나 클라이맥스로 끝난다.

「볼레로」의 전체 구성은 제1부(제1-75마디): 주제-제1변주, 제2부(제75마디-147마디):제2변주-제3변주, 제3부(제147-219마디):제4변주-제5변주, 제4부(제219마디-291마디):제6변주-제7변주 및 제5부(제291마디-340마디):제8변주로 이루어진다.

미국 여행에서 돌아온 라벨은 파리의 뮤직 홀에서 유행하던 통속적인 스페인-아라비아풍의 댄스곡에서 착상을 하였다고 한다. 라벨은 이 곡에서 단 하나의 테마를 사용하여 이를 조금도 전개시키지 않고 리듬도 변화시키지 않고 임시 다른 악구도 삽입하지 않으면서, 전곡을 통해 같은 테마를 되풀이하면서도 조금도 청중을 지루하게 하지 않는 효과를 내고 있다. 그는 특수한 악기 편성으로서 이 테마에 여러 가지 색채를 주어 이 난문제를 해결하고 있다.

볼레로는 스페인의 무곡으로 1780년경 당시의 유명한 무용가 돈 세바스챤 세레소가 고안한 춤으로, 악센트가 강한 3박자를 사용하여 현악기와 캐스터네츠의 반주로 연애의 흥분을 상상시키는 몸짓으로 보통 한 쌍의 남녀가 추는 것인데, 남자가 여자보다 더욱 정열적으로, 또한 정감이 풍부하게 추게 되어 있다.

작품의 구성 및 특징

먼저 저음현의 피치카토를 타고 작은북이 극히 여린 피아니시모(pp)로 원래 볼레로의 리듬으로부터 조금 변형시킨 리듬 주제 2마디를 연주하기 시작하는데, 이 리듬은 끝맺음을 위한 마지막 2마디를 제외하고는 한번도 흐트러짐이 없이 끝까지 계속 되풀이된다. 단 갈수록 리듬도 악기가 더해져 점점 강하게(크레센도) 연주한다.

맨 처음에는 볼레로 리듬 주제가 2회(4마디) 피아니시모(pp)로 연주되고, 주제 가락 A와 B가 각각 2회씩 악기를 바꾸어 가며 점점 강하게 연주되는데, 그 사이 마다 볼레로 리듬이 한 번씩(2마디) 끼어 든다. 이것이 통틀어 4회 반복된 후에 마지막으로 A가 한 번 연주된 후 리듬이 나오고 B가 변형되면서 장대하게 곡을 끝맺는다.

이를 도식화하면 다음과 같다. ( R 볼레로 리듬 주제가락A 주제가락 B )
R + [(R + A) * 2 + (R + B) * 2] * 4 + (R + A) + (R + B')
주제 가락 A는 다장조로 진행되는데 반해, 주제 가락 B는 바장조에서 바단조를 오가면서 진행된다.

2. Pavane pour une Infante Dé‚funte

이 작품은 1899년에 완성되고 1900년에 출판되었는데, 당시에는 큰 관심을 끌지 못하다가 그의 친구이자 스페인 출신의 피아니스트인 리카르도 비녜스의 연주로 <물의 유희>와 함께 1902년 4월 5일 초연된 이후 급속도로 유명세를 타기 시작했다.

그 '죽은 왕녀'가 곡을 헌정한 폴리냐크 공작부인이 아닌가라는 세간의 관심에 대해 작곡가는 “이전 시대 스페인 궁전에서 춤을 추었을 어느 어린 왕녀를 위한 기억”이라 설명하며 특정한 인물이나 대상을 가리키지 않고 오직 단어들이 주는 음률에 따라 제목을 선택한 것임을 피력했다. 그러한 까닭에 연주가들이 필요 이상의 상상이나 해석을 하는 것을 그는 철저히 금지했다.

폴리냐크 공작부인(Duchesse de Polignac, 1749 ~ 1793) ▶

옛 무곡 형식인 파반 리듬을 따라 감각적이지만 몽환적이지 않고 멜랑콜리하다기보다는 노스탤지어적인 분위기가 5분여 동안 진행되는 이 조용한 피아노곡은 <스페인 광시곡>이나 <볼레로> 등에서 보여준 것과 같은 스페인 취향에 라벨이 일찍부터 심취했음을 보여준다.

이 작품이 샤브리에 풍으로서 형식이 빈약하다는 약점을 갖고 있음을 잘 알고 있었던 라벨은 오히려 이 작품이 형식적인 엄격함과 화음의 정교함을 바탕으로 연주되어야 한다고 강조하며 처음에는 연주자에게 극단적으로 느린 템포를 요구했다. 그러나 한 피아니스트의 연주를 들은 뒤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이지 왕녀를 위한 죽은 파반은 아니다”라고 언급하며 음악에 생명력을 부여하기 위해 조금 빠른 템포를 허용하게 된 탓에 현재와 같은 빠르기로 정착될 수 있었다.

특별한 기교나 화려한 스케일을 일체 사용하지 않은 채 평범한 멜로디와 고전주의적인 동시에 완벽주의적인 화성, 극도로 절제된 표현력, 현실에서 유리된 듯한 이상적인 아름다움을 머금고 있는 이 피아노 작품은 초기 라벨의 음악성을 대변하는 명곡으로 손꼽힌다. 이 작품이 대중적으로 널리 성공을 거두게 되면서 라벨은 1910년 오케스트라용을 위한 버전으로 편곡하기도 했다. 플루트와 오보에, 클라리넷, 바순, 내추럴 혼, 하프, 현악이 사용된 이 오케스트라 편곡은 1911년 12월 23일 콩세르 아셀망에서 알프레도 카젤라의 지휘로 초연되었고, 현대에는 기타와 목관악기를 비롯한 다양한 솔로 악기로 편곡, 연주되어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3. La Valse

지금도 여전히 오스트리아 사람들은 합스부르크 제국의 가장 호화롭고 빛나던 시절의 영광을 가슴에 품고 그 때를 잊지 않는다. 그래서 사교계의 꽃이었던 왈츠가 연주되는 신년음악회에 대한 오스트리아 사람들의 마음이 복잡 미묘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 시절을 그리워한 것은 오스트리아 사람들뿐만이 아니었다. 화려했던 오스트리아가 1차 세계대전으로 잿빛이 되었을 때 프랑스 작곡가인 라벨도 찬란했던 제국의 빛으로 되살리고 싶었던 사람 중에 한 명이었다. 그런 마음을 대변해 주는 곡이 '라 발스'다.

라벨의 '라 발스 (왈츠, La Valse)'는 1906년 왈츠의 왕인 요한 슈트라우스를 존경하는 마음으로 작업을 시작해 완성하지 못하고 1914년에 교향시 '빈'이라는 제목으로 진로를 바꿨다가 1919년 안무가 세르게이 댜길레프에게 발레를 위한 곡을 위촉받고 '라 발스, 발레를 위한 시'로 최종 수정해 이 곡이 탄생하기까지 14년이 걸렸다.

라벨은 비엔나 왈츠를 그린 작품의 서문에 이렇게 묘사했다.

"흔들리는 안개 속으로 왈츠를 추는 남녀들이 있다. 점차 구름은 걷히고 아주 큰 홀에서 수없이 많은 원을 그리며 돌고 있는 사람들이 보인다. 장면이 더 늘어난다. 갑자기 샹들리에의 불빛이 번쩍인다. 1855년 경 한 황실의 궁전이다."

1906년에 [라 발스]를 처음 구상하기 시작할 당시 라벨은 장 마르놀에게 보낸 편지에 왈츠의 왕 요한 슈트라우스에 대한 존경을 담은 왈츠를 작곡할 계획이라 밝히면서 이렇게 덧붙였다.

“이 멋진 리듬에 대해 내가 얼마나 공감하고 있는지 당신도 잘 아실 겁니다. 또한 춤으로 표현된 환희에 대해서도..” 그

러나 왈츠 리듬의 환희를 담은 작품은 곧바로 완성되지 못했다. 1914년에 라벨은 다시 노선을 바꿔 이 작품을 ‘교향시 빈’ 이라 명명하고 “일종의 빈 왈츠의 신격화”이자 “환상적이고 운명적인 소용돌이”라 말했다. 그러나 그때까지도 작품은 완성되지 못했다.

전반부의 춤곡들이 비교적 정돈된 느낌인데 비해 곡의 후반부에선 더욱 휘몰아치는 음악이 전개된다. ‘라 발스’의 후반부 시작 부분에 라벨은 “다시 처음의 템포로” 연주할 것을 지시한다. 템포뿐 아니라 음악 역시 처음과 비슷하다. 더블베이스와 콘트라바순, 그리고 팀파니가 곡의 도입부에 나왔던 왈츠 리듬의 단편을 여리게 연주하는 동안 현악기들은 두 음을 교대로 빠르게 연주하며 부스럭거리는 소리를 만들어낸다.

하지만 왈츠는 급격히 광포해지며 전반부의 음악보다 더욱 열광적으로 변모한다. 걷잡을 수 없는 왈츠의 소용돌이에선 묘한 폭력성마저 느껴진다. 그것은 마치 ‘운명적인 소용돌이’에 의해 왈츠를 추도록 강요당하는 듯한 광란의 음악이다. 그리고 그 광포한 왈츠가 절정에 달하는 순간, 관악기와 현악기, 탬버린이 함께 연주하는 5개의 강한 파열음이 마침내 광란의 왈츠를 중단 시킨다.


후반부에서는 소용돌이치는 듯한, 현기증 나는 왈츠의 향연을 묘사한다. <출처: NGD>

[라 발스]에선 과격한 춤곡 리듬뿐 아니라 다채로운 음색의 향연을 즐길 수 있어서 더욱 특별하다. 전곡을 통해 풍부하고 효과적인 하프의 용법과 타악기의 리듬, 플루트의 트레몰로와 바이올린의 하모닉스 등의 현란한 주법들이 펼쳐지면서 신비로운 음향을 만들어낸다. 그러나 [라 발스]를 처음 들으면 과격한 리듬과 지나친 음향효과에 다소 혼란스럽고 이상한 음악으로 다가올 수도 있다. 실제 빈 왈츠는 대중적인 민중의 음악이지만 빈 왈츠를 예찬하는 [라 발스]는 결코 대중적인 작품이라 할 수는 없다. 하지만 [라 발스]는 빈 왈츠보다 한결 변화무쌍한 음색과 리듬으로 20세기의 새로운 왈츠를 제안하고 있다는 점에서 매우 참신하며 독창적인 춤곡이다.

4-6. Daphnis et Chloé Suite No.2

작품의 개요 및 배경

라벨의 3개 발레곡 가운데 하나인「다프니스와 클로에」는 그의 창작의 절정을 이룬 걸작이다. 1912년 6월 8일 파리에서 초연 되어 작곡가로서 라벨의 지위가 한층 높아졌음은 물론, 니진스키와 칼사비나의 춤으로 된 디아길레프 러시아 무용단의 공연은 일대 혁신적인 센세이션을 일으키기도 했다. 라벨은 그 동안의 모든 작품을 바탕으로 하면서 이전 작품을 초월한 천재적 재능을 구현시켜 예술적 가치를 높임으로써 프랑스의 대표적인 관현악곡으로 꼽히게 되었다.

선이 자유롭고 부드러우며, 리듬의 자유와 탄력을 엿볼 수 있어 라벨 특유의 정묘한 관현악법을 느낄 수 있으며, 지적인 구성에 의해 고대 그리스의 전원시가 갖는 서정과 관능이 잘 다듬어져 있다.

프랑수아 파스칼 시몽 제라르 남작, <다프니스와 클로에>, 1825년 ▶

총 3장으로 구성된 발레의 줄거리는 고대 그리스 신화 중 양치는 다프니스와 그의 연인 클로에와의 사랑 이야기를 주제로 연적인 돌콘과 뤼세이온, 해적, 판의 신 등이 등장하는 전원시를 내용으로 하고 있다.

라벨은 이 무용곡 중에서 2개의 모음곡을 엮었는데, 제1모음곡은 제1장과 제2장에서 발췌한 3곡, 제2모음곡은 제3장에서 발췌한 3곡으로 구성되어 있다. 특히 이 제2모음곡은「볼레로」와 더불어 라벨의 작품 가운데 가장 널리 연주되는 곡목이 되었다.

작품의 구성 및 특징

해돋이(Lever du jour)
아직 어두운 새벽, 동굴 입구에는 다프니스가 잠들어 있고, 바위 사이에 맺힌 이슬이 떨어져 졸졸 흐르는 냇가를 묘사한 음악이 들린다. 해가 떠오르기 시작하며 새소리가 들려오는 가운데, 양치는 목자들이 피리를 불며 양떼를 몰고 지나간다. 목자들은 마침내 다프니스를 찾아 일으키고, 얼마 후 클로에가 월계관을 쓰고 나타나자 둘은 기뻐한다. 오케스트라는 힘차게 울리며 태양이 점점 떠올라 그들을 축복한다.

제2곡 판토마임 (Pantomime)
늙은 목자 라몽으로부터 판의 신이 님프 시링크스와의 사랑을 떠올리며 클로에를 구해왔음을 들은 클로에는 플룻의 애수 띤 이국적인 선율에 맞추어 판과 시링크스의 전설을 전아하게 춤춘다. 상쾌한 아침이 찾아온 가운데 다프니스는 님프의 제단을 향해 둘의 사랑을 맹세한다. 그러자 처녀들이 나타나 탬버린을 치며 춤추고, 다시 남자들이 나타나 춤추면서 환희의 난무가 시작된다.

제3곡 일동의 춤 (Dance grandrale)
작은 클라리넷이 주제를 연주하고 독특한 리듬의 곡이 시작되는데, 처음에는 억제되고 있었던 감정도 마침내 도취된 것처럼 고조되어 현이 표현하는 환희의 주제도 섞이면서 곡은 물결치듯 클라이맥스로 향한다. 다프니스와 클로에의 주제가 둘의 사랑을 확인하듯 높이 노래되고 끓어오르는 듯이 급히 다가오는 리듬의 광란 속에 환희의 절정을 이루면서 곡을 마친다.

글 : 음악평론가 곽근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