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RODUCTION

Heutling Quartet
녹음 : 971 EMI Germany. Digital remastering P 1998 EMI Germany.

Total Time 01:16:17

String Quartet No.7 ~ 9

낭만 현악4중주는 말할것도 없이 슈베르트부터 출발한다. 모든 실내악 분야에서도 현악4중주가 가장 중심의 위치에 서있는 것은 4성부와 같이 4개의 악기가 각자 동등한 위치에서 협력하기 때문이며 화음의 구성이나 일체된 소리의 질감에서 보더라도 음악적 완성도가 가장 높다는데 이의를 제기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기에 고전의 양식에서 비롯된 현악4중주가 유독 현대에 이르기까지 작곡가들의 관심과 사랑을 받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한다. 고전에서 근대에 이르는 작곡가들의 현악4중주 작품수를 살펴보면 처음 시작한 하이든이 74곡으로 제일 많으나 작품 번호 33 이후부터 본격적인 현악4중주로 볼 수 있고 이어서 모차르트 27곡, 베토벤 17곡으로 고전파 시대가 막을 내린다.

낭만파 이후에는 슈베르트가 15곡으로 단연 앞서있고 멘델스존 8곡, 슈만 3곡, 브람스 3곡,드보르작 9곡, 차이코프스키 3곡, 보로딘 2곡, 스메타나 2곡, 프랑크, 포레, 베르디, 볼프, 드뷔시, 라벨이 각 1곡, 그리고는 바르토크 6곡, 쇼스타코비치 10곡으로 되어있다. 물론 이외에도 현대작곡가들의 작품이 있겠고 또 널리 알려져 있지는 않지만 많은 작곡가들이 현악4중주곡을 썼을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결국 위에서 열거한 작품들이 주로 연주 된다는 점은 분명하다. 한가지 특이한 점은 베토벤 이후 낭만파 작곡가들중 독일 작곡가들이 주로 현악4중주를 계승 발전 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다시말해 슈베르트, 멘델스죤, 슈만 ,브람스가 그들이다.

베토벤의 뒤를 이어 현악4중주를 이어받은 슈베르트는 600여 곡의 가곡과 9개의 교향곡 그리고 많은 실내악곡과 오페레타, 종교음악을 작곡하면서도 15곡의 현악4중주를 만들었다는 것은 기적이 아닐 수 없으며 특히 그가 31세로 짧은 삶을 마감한 것을 생각하면 우리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천재성이라 하겠다. 외견상으로 보면 슈베르트의 현악4중주는 모차르트나 베토벤의 형식을 빌려오고 있어 낭만이라기 보다 고전으로 분류해도 좋으리라는 주장도 없지 않지만 음악적 흐름과 화음구성 그리고 전조의 묘미를 살펴보면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낭만의 물결이 출렁이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1797년생인 슈베르트가 처음 현악4중주를 쓴 것이 1810년 그의 나이 14세 때이며 그로부터 3년이 흐른 1813년 까지 7곡의 현악4중주를 작곡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현악4중주 8번 이전 그러니까 7번 까지는 예술적 현악4중주라기 보다는 친우들 혹은 형제들과 재미로 연주하기 위한 습작의 범주에 머무르고 있고 그래서 본격적인 슈베르트의 현악4중주의 시작은 8번을 기점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어쨌든 1810년에 작곡한 4중주 1번은 고전주의 틀속에 있지만 조성의 관계라든가 음악의 흐름은 매우 자유롭고 젊은 활기가 넘치고 있으며 그로부터 2년 후에 작곡된 2번은 1번과 같이 가족음악회를 위해 만든 것이지만 오랫동안 묻혀 있다가 1955년에 이르러서 초연 되었는데 그것도 1, 3 악장만 발견되었다가 후에 다른 컬렉션에서 나머지 악장을 찾아내어 지금은 전악장이 연주되고 있다. 3번은 2번과 같은 해인 1812년에 작곡했으며 이때에 슈베르트는 살리에리로부터 작곡 지도를 받고 있었다. 4, 5, 6번은 모두 1813년에 작곡된 것으로 5번은 2개의 악장만 전해지고 있고 오히려 7번은 1.2번과 같은 해에 작곡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앞에서도 언급한 바와같이 4중주 8번부터는 가족음악회가 아닌 전문 연주가 그룹을 위한 작품으로 생각되는데 8번은 1814년 작으로 이때는 많은 가곡이 작곡된 해이기도 하다. 이때부터 10번까지는 매해 한곡씩 작곡했으나 11번 작품 125의 2는 10번을 작곡한지 3년이 지난 1816년에 작곡 되었고 이 시기의 현악4중주는 4악장 형태로 1악장 소나타 형식 2악장은 느린악장 3악장 메뉴엣 그리고 4악장은 론도풍의 빠른 악장이 주종을 이루고 있다.

다시 4년여를 보낸 1820년, 23세 때 작곡한 12번은 소나타 형식의 단악장으로 약10분 정도 걸리며 또 4년의 세월을 보낸 1824년에 작곡된 13번은 일명 로자문데 4중주로 불리우는 곡이다. 이는 슈베르트의 극음악 로자문데 제3간주곡의 선율을 2악장의 주제로 사용했기 때문인데 슈베르트는 로자문데 간주곡을 즉흥곡 작품 142의 3번에도 쓰고 있어 익히 알려져 있는 선율이다.
로자문데라는 부제 때문에 2악장에 먼저 관심이 가겠지만 초연 때의 기사를 보면 3악장 메뉴엣이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으며 특히 3악장의 멋진 전조는 다시 한번 슈베르트의 독특한 전조의 맛을 느끼게 한다. 1824년에 착수해서 이듬해인 25년에 완성한 14번이 바로 유명한 죽음과 소녀이다. 지금에 와서는 최고의 걸작으로 많은 청중들에게 감동을 나누어 주지만 초연 때는 연주자들의 불성실이 슈베르트를 화나게 해 슈베르트 생전에는 다시 연주되지 않았다. 죽음과 소녀라는 제목은 말할 것도 없이 슈베르트가 1817년에 쓴 가곡 죽음과 소녀를 2악장 변주곡의 주제로 쓰고 있기 때문인데 가곡의 주선율이 아닌 전주 부분과 가곡 후반의 피아노 반주부가 주제로 사용된다.

금년 4월 한국을 찾은 세계적인 피나바우쉬 현대무용단은 카네이션이라는 작품을 무대에 올리면서 중간 부분에 슈베르트의 죽음과 소녀 2악장을 썼거니와 언제들어도 깊은 감동의 물결이 듣는이의 마음을 흔든다. 1악장 처음부터 강렬한 울림이 슈베르트 말년의 비애를 느끼게 하는데 작곡은 세상 떠나기 3년 전이었지만 사후에 출판됨으로써 작품 번호가 없이 유작으로 남게 되었다.

슈베르트의 마지막 현악4중주 15번은 1826년에 작곡되어 슈베르트의 마지막 해인 1828년 3월에 초연되었다. 강렬한 표정이 무언가 할말이 많은 것 같은 느낌이 들고 전체적으로 짜임새도 있으나 14번에 비해 연주빈도는 높지 않다.

슈베르트를 이은 낭만파 작곡가는 유복한 집안에서 태어나 어릴 때부터 집안의 사설 오케스트라를 지휘하는 등 생전에는 지휘자로 더 유명했던 멘델스존이다. 함부르크에서 태어나 베를린에서 자랐고 후에는 라이프치히에서 지휘자로 활동한 멘델스존은 행복한 음악가의 길을 걸었지만 그도 역시 38세란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슈베르트의 음악이 기쁨도 눈물 근처에 있다는 표현처럼 슬픔의 그늘이 깔려있는데 비해 멘델스존의 작품은 경쾌하고 즐거울뿐 아니라 고전의 양식도 비교적 잘 따르고 있어 고전적 경향도 무시할 수 없다. 그래서인지 우리 한국 사람은 멘델스존의 작품 연주에 정서적 어려움이 있는 것 같다. 이를 바꾸어 말하면 세련된 테크닉과 긍적적인 밝음이 자연스럽게 흘러나와야 멘델스존을 제대로 재현할 수 있다는 뜻이다.

글 출처 : 불멸의 음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