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ethoven

Sonata for Piano and Violin No.5 in F Major Op.24 (Spring)

David Oistrakh (Violin), Lev Oborin (Piano)

녹음 : 1962 (ⓟ 1964) Stereo
Le Chat du Monde, Paris

베토벤도 때로는 달콤하고 따뜻하다.

베토벤 바이올린 소나타 5번 F장조 '봄'

  · 1801년 작곡.
  · '봄'이라는 제목을 베토벤이 직접 붙이지는 않았지만, 곡의 분위기를 잘 드러내는 별칭으로 통용되고 있음.
  · 연주시간 약 23분

  베토벤의 바이올린 소나타 5번 F장조 Op.24는 지금 듣기에 딱인 음악입니다. ‘봄’이라는 이름을 베토벤이 직접 붙인 것은 아니지만, 음악의 분위기에 참으로 잘 들어맞는 별칭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물론 ‘봄’을 표상하는 음악은 이밖에도 많지요.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음악은 아마도 비발디의 바이올린 협주곡 <사계>일 성싶습니다. 이 곡은 당연히 봄으로 막을 올립니다. 또 슈베르트의 피아노 5중주 ‘송어’에도 봄기운이 샘솟고, 멘델스존의 <무언가>에도 ‘봄의 노래’가 들어 있지요. 하이든의 현악 4중주 ‘종달새’도 봄 냄새가 물씬합니다. 드뷔시가 색채감 있는 관현악으로 그려낸 ‘봄’도 있습니다. 또 슈만의 교향곡 1번도 ‘봄’이라는 이름을 갖고 있습니다. 한데 잠시 언급하자면, 슈만의 ‘봄’은 어딘지 모르게 우울하고 불길합니다. 아마 슈만의 기질 탓일 겁니다. 교향곡 1번을 작곡하는 동안에도 슈만은 조증과 울증을 여러 번 반복했을 테고 그것이 그대로 음악에 투영됐다고 볼 수 있습니다.

   베토벤은 모두 10곡의 바이올린 소나타를 남겼습니다. 그중에서도 5번 ‘봄’은 9번 ‘크로이처’와 더불어 가장 사랑받는 곡이지요. 다시 말하거니와 따사로운 봄의 정취에 이만큼 잘 어울리는 음악도 찾기 힘듭니다. 작곡 시기는 1801년으로 알려져 있지요. 그때가 언제였던가요? 잠시 베토벤의 생애를 복기해보겠습니다. 자, 베토벤이 하일리겐슈타트의 유서를 썼던 것이 1802년이었지요. 하지만 베토벤은 죽지 않았지요. 대신 ‘걸작의 숲’으로 들어섰습니다. 그 시점에서부터 이른바 베토벤의 ‘음악적 중기(中期)’로 일컬어지는 시대가 열립니다. 말하자면 오늘날 우리가 베토벤을 연상하면 곧바로 떠오르는 ‘드라마로서의 음악’이 이 시기에 발화합니다. 또한, 앞 시대의 선배인 하이든과 모차르트의 영향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독창적인 어법을 점점 강화해 갔던 시기였다고 할 수 있지요.

   <바이올린 소나타 5번 F장조 Op.24>는 이른바 ‘중기’로 들어서기 직전에 썼던 음악입니다. 소나타 4번 a샤프단조와 소나타 5번 F장조를 거의 동시에 작곡했지요. 하지만 곡의 분위기는 많이 다릅니다. 4번은 어둡고 내향적인 반면에 5번은 밝고 따뜻합니다. 그래서 ‘봄’이라는 제목이 더할 나위 없이 어울립니다. 이 시기의 베토벤, 그러니까 의사들로부터 “당신의 난청은 치유 불능입니다”라는 판정을 받기 전의 베토벤은 아직 하이든과 모차르트의 영향권 안에 있었다고 볼 수 있지요. 그래서 소나타 5번 ‘봄’은 고전주의 음악에서 주로 표현했던 ‘양식화되고 객관화된 감정’을 보여줍니다. 오늘날 우리가 베토벤의 음악적 이디엄으로 기억하고 있는, 드라마틱하고 주관적인 감정 표현은 아직 확연하게 드러나지 않습니다.

모차르트적 기풍과 베토벤적 개성이 함께 어우러지다

   하지만 자세히 들어보면 베토벤적 개성이 서서히 꿈틀거림을 감지할 수 있지요. 앞서 작곡한 바이올린 소나타 1, 2, 3번이 모차르트의 영향을 짙게 드러내고 있는 것에 견주자면, 4번과 5번은 그 영향권에서 꽤 벗어나 있는 장면을 보여줍니다. 다시 말해 5번 ‘봄’에는 모차르트적 기풍과 베토벤적 개성이 함께 어우러져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5번 ‘봄’은 듣기에 편안하고 아름답다는 측면(고전적 기품)과 더불어, 베토벤 특유의 변화무쌍함, 듣는 이의 입장에서 얘기하자면 ‘출렁거리는 음악적 쾌감’을 동시에 전해줍니다. 물론 우리가 베토벤이라는 음악가를 통해서 보다 낭만적으로 확장된 드라마를 맛보려면 좀 더 기다려야 하겠지요. 그것은 적어도 하일리겐슈타트의 유서 이후에나 가능한 일입니다.

1악장: 알레그로

   오늘 우리가 베토벤의 ‘봄’을 들으면서 기억해야 하는 것은, 봉두난발에 광기어린 눈빛으로 표상되는 베토벤이 이렇게 달콤하고 따사로운 곡도 썼다는 사실입니다. 바이올린으로 문을 여는 1악장의 첫 번째 주제는 매우 청명하고 상쾌합니다. ‘정말 베토벤의 음악일까?’라는 의구심이 들 정도로 달콤한 선율이지요. 피아노는 밑에서 바이올린을 조용히 받쳐주다가 잠시 후 위로 도약합니다. 그렇게 서로 간에 위치를 바꿔 가며 주거니 받거니 하는 연주가 펼쳐지지요. 얼었던 시냇물이 풀려 졸졸 흘러가는 느낌, 들판의 나무들이 서서히 기지개를 켜는 듯한 분위기를 전해줍니다. 하지만 후반부로 갈수록 긴장감이 점점 고조되면서 베토벤적 개성을 드러내지요.

2악장: 아다지오 몰토 에스프레시보

   이어서 느리게 흘러가는 2악장은 피아노가 먼저 문을 엽니다. 바이올린이 그 위에 살며시 얹히면서 참으로 아름다운 2중주가 펼쳐집니다. 그러다가 다시 피아노와 바이올린이 위치를 바꾸지요. 바이올린이 노래하고 피아노가 밑에서 반주하기 시작합니다. 그렇게 피아노와 바이올린이 주고받는 대화에 집중하면서 2악장을 들어보시기 바랍니다.

   한쪽이 노래하면 한쪽이 슬쩍 뒤로 물러서고, 그러다가 다시 위치를 바꾸는 장면을 반복하지요. 봄날의 아지랑이를 바라보면서 뭔가 생각에 빠져들고 있는 모습입니다. ‘추억’이나 ‘회상’ 같은 단어를 연상하게 만들지요. 저는 이 곡의 2악장을 들을 때마다, 헤어졌던 친구나 연인이 노년에 이르러 재회하는 장면, 산등성이에 나란히 앉아 ‘옛날’을 회상하는 장면을 연상하곤 합니다.

3악장: 스케르초. 알레그로 몰토

   3악장은 빠른 템포의 스케르초 악장이지요. 피아노가 경쾌한 8마디를 연주하면서 시작합니다. 곧이어 바이올린이 합세하지요. 이어서 피아노와 바이올린이 마치 술래잡기를 하듯이, 피아노가 깡총깡총 달려가고 바이올린이 그 뒤를 깔깔대며 쫓아가는 분위기의 연주가 펼쳐집니다. 그야말로 ‘스케르초’라는 이름에 걸맞게 익살스러운 악장입니다.

4악장: 론도. 알레그로 마 논 트로포

   1분이 조금 넘는 짧은 스케르초가 끝나고 이어지는 4악장은 같은 주제를 여러 번 반복하는 론도(Rondo) 악장이지요. 피아노가 먼저, 이어서 바이올린이 첫 주제를 연주합니다. 이 주제는 4악장에서 네 차례 반복됩니다. 물론 단조의 두 번째 주제, 당김음을 사용하는 세 번째 주제도 등장하지만, 가장 많이 반복되는 첫 번째 주제에 귀를 기울이면서 마지막 악장을 들어보시기 바랍니다.

구분선

추천음반

1. 다비드 오이스트라흐(David Oistrakh), 레프 오보린(Lev Oborin), 1962, Philips.

아무리 들어도 물리지 않는 녹음이다. 오이스트라흐의 바이올린은 두툼하고 온화하다. 템포는 약간 느린 편이다. 오보린은 단정하면서도 힘 있는 연주로 동행한다. 1962년에 녹음된 이후, 여러 번 표지를 바꾸면서 재발매된 스테디셀러다. 오늘은 4장의 CD에 베토벤의 바이올린 소나타 전곡(10곡)을 담고 있는 전집을 권한다. 물론 낱장으로 구매를 원할 경우에는 국내에서 라이선스로 발매된, 5번과 9번이 커플링된 음반을 선택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 하지만 10곡의 베토벤 소나타를 모두 수록한 이 전집은 소장할 가치가 충분하다. 오이스트라흐가 전곡을 녹음한 유일한 경우이기도 하다.
2. 이작 펄만(Itzhak Perlman), 블라디미르 아시케나지(Vladimir Ashkenazy), 1974, Decca.

베토벤의 바이올린 소나타 5번을 수록한 음반 가운데 요즘 가장 인기가 높은 축에 속하는 음반이다. 이제는 노년에 접어든 펄만과 아시케나지의 젊은 시절 연주다. 녹음 당시 펄만은 20대 후반, 아시케나지는 30대 중반이었다. ‘젊은 그들’의 연주답게 리드미컬하고 화려하다는 점이 매력이다. 타이밍이 딱딱 떨어지는 연주라고 할 수 있다. 펄만의 바이올린과 아시케나지의 피아노는 너무 얇지도 않게, 그렇다고 두텁지도 않게 조응한다. 물론 좀 더 물기가 촉촉한 연주를 기대하는 이들에게는 약간 딱딱하게 느껴질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것은 거꾸로, 이 음반에 자꾸 손이 가게 만드는 이유이기도 하다.
3. 이자벨 파우스트(Isabelle Faust), 알렉산더 멜니코프(Alexander Melnikov), 2009, Harmonia Mundi.

파우스트의 바이올린은 불필요한 수사를 배제하면서도 세밀하다. 그녀와 멜니코프의 2중주는 2000년대에 녹음된 베토벤 소나타 중에서도 수작(秀作)으로 손꼽힌다. 파우스트의 바이올린은 비브라토를 거의 구사하지 않는다는 측면에서, 소프라노 에마 커크비의 목소리를 연상시키기도 한다. 이 전집은 영국 그라모폰 상과 BBC 뮤직 초이스 어워드, 독일 에코 클래식 상, 프랑스 쇼크 드 클라시카 등 각종 음반상을 받았다. 10곡의 소나타에 저마다 담겨 있는 스타일과 정서를 매우 적확하게 묘사하고 있다는 평을 듣는다. 파우스트와 멜니코프 듀오는 2012년 6월 서울을 찾아와 연주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