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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ethoven
Symphony No.3 in E flat Major Op.55 (Eroica)
Karl Böhm (Conductor)
Berliner Philharmoniker
1961/12 Stereo
Jesus-Christus-Kirche, Berl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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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난을 뚫고 전진하라!
베토벤 교향곡 3번 Eb 장조 '에로이카'
· 1803년 작곡.
· 하이든과 모차르트의 영향권에서 완전히 벗어난, 장대한 규모와 뜨거운 열정의 교향곡
· 연주시간 약 50분
지휘자 마리스 얀손스(Mariss Jansons, 1943 ~ ) 이야기로 시작하겠습니다. 그는 1996년 4월에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푸치니의 오페라 《라 보엠》을 지휘하다가 심장마비로 쓰러졌던 적이 있지요. 공연 종료를 7분 남겨 좋은 시점이었습니다.
다행히 청중 가운데 한 명이었던 의사가 응급조치를 취하고 급히 병원으로 실려 갈 수 있었던 덕분에 구사일생으로 살아났지요. 어느덧 일흔 살을 넘긴 그는 당시 얘기만 나오면 껄껄 웃으며 여유를 보이지만, 사실은 조금만 아차 했어도 세상과 영영 이별할 뻔했던 상황이었습니다.
심장병을 극복하고 무대로 돌아온 얀손스는 참으로 눈부신 활약을 펼치고 있습니다. 2003년에 바이에른 방송교향악단의 수석지휘자로 취임한 것을 비롯해, 다음 해에는 네덜란드의 국보급 오케스트라인 암스테르담 로얄콘세르트 해보우의 여섯 번째 상임지휘자를 맡았지요.
그는 그렇게 세계적으로 중요한 오케스트라 두 곳을 이끌며, 내가 언제 아팠냐는 듯이 왕성한 활동을 펼치고 있습니다. 게다가 그의 외모는 일흔이라는 나이가 무색하게 젊어 보입니다. 얼굴도 미남이고 표정도 환해서 여성 팬들도 꽤 많습니다. 하지만 지휘자로서의 얀손스는 매우 깐깐한 모양입니다.
현재 런던 필하모닉에서 연주하는 한국인 바이올리니스트 김정민은 한때 바이에른 방송교햑악단 단원으로 활동했었는데, 그가 저한테 이렇게 귀띔한 적이 있습니다. “얀손스 선생은 완벽주의자예요. 연습을 지독하게 시켰다가 실전에서 확 풀어주는 고수 중의 고수죠.”
그런 얀손스가 바이에른 방송이 제작한 다큐멘터리에 출연해 이렇게 말했던 적이 있습니다. “전에는 사람들이 나를 가리켜 러시아음악 스페셜리스트라고 말했습니다. 지금은 말러와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하이든 연주로 호평받고 있지요. 그러나 요즘 제일 관심이 가는 작곡가는 베토벤입니다. 나이가 들수록 그에게 끌립니다. 베토벤은 특별합니다. 철학적이고 매우 깊이가 있습니다.” 얀손스는 그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이, 2011년 10월 22일에 빈 무지크페라인 잘에서 바이에른 방송교향악단을 이끌고 베토벤의 교향곡 3번 ‘에로이카’를 연주해 우레와 같은 박수를 받았지요. 2012년 서울에 찾아왔을 때도 바로 이 곡을 연주했습니다.
의심할 여지없이, 교향곡 3번은 베토벤의 음악적 생애를 대표하는 걸작 가운데 하나입니다. 이 곡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가장 먼저 ‘하일리겐슈타트 유서’를 떠올릴 필요가 있을 겁니다. 베토벤은 32살이었던 1802년, 오스트리아 빈 교외의 한적한 마을 하일리겐슈타트에서 지내고 있었는데 상황이 아주 나빴습니다. 몇 년 전부터 골칫거리였던 귓병이 날로 악화돼 아예 ‘치유 불능’ 판정을 받았던 것이지요. 당시의 베토벤은 원인조차 알 수 없는 난치병과 창작의 고통이라는 이중고에 시달리면서 차라리 죽음을 생각했던 모양입니다. 그 유명한 ‘하일리겐슈타트 유서’가 이때 써집니다. 두 동생들에게 작별을 고하는 편지 형식의 유서였습니다. “이대로 죽는다 해도 후회는 없다. 죽음이 나를 끝없는 고뇌에서 해방시켜 줄 테니.”
다행히 베토벤은 죽지 않았습니다. 유서는 동생들한테 전달되지 않은 채 책상 속에 잠들어 있다가 베토벤 사후에 발견되지요. 그리고 베토벤은 죽음 대신, 이른바 ‘걸작의 숲’으로 성큼 들어섭니다. 그 문을 활짝 여는 곡이 바로 교향곡 3번 ‘에로이카’라고 할 수 있지요. 베토벤 이전의 누구에게서도 볼 수 없었던 커다란 규모, 격렬하게 부딪히는 긴장과 이완이 듣는 이를 가슴 벅차게 만드는 곡입니다. 연주시간 약 50분에 달하는 이 장대한 교향곡은 마치 ‘음악이 가야 할 길이 바뀌었다’는 선언과도 같습니다. 베토벤은 귀족의 비위를 맞춰주던 산뜻한 선율과 형식을 가차 없이 파괴했고, 그리하여 음악은 그 자체로 묵직한 존재감을 얻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베토벤을 ‘위대한 음악가’로 칭송하는 이유가 바로 그 지점이지요.
‘에로이카’ - 낭만의 시대를 열다
바야흐로 ‘낭만’의 시대가 ‘에로이카’로부터 열립니다. 저는 이 교향곡이 걸작인 이유에 대해, 고전 속에 낭만을, 낭만 속에 고전을 품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형식을 중시했던 고전주의와 감정의 자유로운 표출을 강조하는 낭만주의가 하나의 음악 속에서 뜨겁게 몸을 섞고 있습니다. 이 두 개의 대립을 하나로 끌어안는다는 것을 결코 쉬운 일이 아니지요. 그래서 창작은, 적어도 베토벤 같은 예술가에게 창작이란 하나의 전쟁과도 같다는 생각이 들곤 합니다.
물론 당시의 청중에게는 그다지 환영받지 못했습니다. 아마 청중에게는 이 낯선 음악이 ‘괴물’처럼 느껴졌을 겁니다. 하지만 이 곡은 생전의 베토벤이 자신의 마지막 교향곡인 9번 ‘합창’과 더불어 가장 큰 자부심을 가졌던 교향곡입니다.
이 곡에 ‘에로이카’(영웅)라는 부제가 붙게 된 연유는 세상에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이 자리에서 부연할 필요는 없겠지요. 다만, 보나파르트 나폴레옹에 대한 기대와 흠모가 베토벤뿐 아니라 당시의 예술가들에게는 매우 일반적 태도였다는 점은 기억할 필요가 있을 듯합니다. 특히 괴테의 나폴레옹 숭배는 유명하지요. 당시는 프랑스 혁명의 후반기였습니다. 포병장교 출신으로 왕정 쿠데타에 성공한 나폴레옹이 공화주의를 지향하는 유럽 지식인들에게 열렬한 환호를 받은 것은 당연한 일이었겠지요. 베토벤이 나폴레옹을 생각하면서 이 곡을 작곡했다는 것은 검증된 정설입니다. 오스트리아 빈에 보관돼 있는 악보 표지에 ‘보나파르트’라는 글자를 북북 지워버린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습니다. 대신 이 곡은 ‘신포니아’라는 제목으로 1806년에 출판됐지요.
‘영웅 교향곡’ 악보 표지에 ‘보나파르트’라는 글자를 북북 지워버린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베토벤의 ‘영웅상(像)’은 또 있었습니다.
인류에게 불을 가져다주고 끝없는 형벌을 겪어야 하는 그리스 신화의 프로메테우스야말로 베토벤의 원형적 영웅상이었습니다.
▶인간을 위해 불을 훔치는 프로메테우스
베토벤은 ‘프로메테우스의 불’을 ‘새로운 도덕과 질서’라는 의미로 받아들였던 것 같습니다. 공화주의자로서의 이상과 일치하는 해석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베토벤은 ‘에로이카’를 쓰기 전이었던 1800년, <프로메테우스의 창조물>이라는 발레음악을 작곡하는데, 바로 이 음악에 그 유명한 ‘영웅 모티브’를 등장시킵니다. 가장 마지막 곡인 ‘제16곡’에서 모습을 드러내지요.
베토벤은 이 모티브를 교향곡 3번에도 그대로 가져옵니다. 당연한 일이었겠지요. 마지막 4악장에서 포르테시모의 강렬한 서주가 터져 나온 직후, 저음의 현악기들이 피치카토 주법으로 연주하는 첫 번째 주제가 바로 그 ‘영웅 모티브’입니다.
1악장: 생기 있는 빠르기로(Allegro con brio) 내림 마 장조 3/4박자
소나타 형식. 그러나 규모가 크고 두 개의 주제가 의외로 다양하고 풍부한 악상을 지니며 이들 재료를 낱낱이 구사하고 있다. 1주제는 첫부분의 강력한 두 개의 화음 후에 저음역의 현악기에서 엄숙하게 등장한다. 2주제는 부드럽고 온화하게 클라리넷으로 연주되며 바이올린으로 옮겨간다.
발 전부는 매우 정성스럽게 대위법적으로 짜여지며, 극적인 힘을 지니고 커다란 클라이맥스를 이룬다. 공식적으로 제시부의 재료를 다시 출현시키는 재현부 후에 또다른 새로운 발전부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충실한 코다가 나오고 이 당당한 악장을 마무리한다.
2악장: 대단히 느리게(Adagio assai) 다 단조 2/4
박자
자유로운 3부 형식. {장송 행진곡}의 악장이다. 현의 주제가 나타나며 장중한 걸음걸이로 나아간다. 중간부는 다장조로 밝아지며, 영웅의 생전의 업적을 기리는 것으로 보인다. 그 후 제1부의 주요 선율이 다시 나타나며 그에 토대를 둔 푸가토가 차례대로 펼쳐진다. 마지막으로 다시 주요 선율이 모습을 보이며 슬픔과 체념을 품은 채 곡을 중단하고 인상깊게 마무리한다
3악장: 스케르초. 빠르게 생기있게(Allegro vivace) 내림 마 장조 3/4박자
3부 형식. 1부는 빠른 스타카토의 움직임으로 시작하며, 차츰 힘을 증대시켜 간다. 중간부 트리오는 호른의 선율로 매우 아름답다. 그리고 다시 1부가 반복된다.
특히 악장의 중간쯤에 등장하는 아름다운 호른의 선율, ‘빰~ 빠밤’ 하고 울려 퍼지는 소리에 귀를 기울여 보기 바랍니다.
4악장: 매우 빠른 속도로(Allegro molto) 내림 마 장조 2/4박자
같은 베이스의 선율형을 자유롭게 몇 차례 반복하여 그 위에 변주를 쌓아나가는 파사칼리아와 비슷한 형태를 취한다. ff로 격렬히 연주되는 서주 후에 피치카토의 1주제를 중심으로 하여 베이스에서 몇 차례 반복된다. 이 것은 {프로메테우스의 창조물} 끝 곡에 베이스에서 빌려온 것이다. 이윽고 가볍고 평온한 2주제가 등장한다. 전체적으로는 푸가토와 그 밖의 대위법적인 기교들이 나타나며 커다랗게 정점을 향해 진행한다. 거기에 긴장이 풀리고 마지막에는 다시 한 번 압도적인 코다로 전곡을 마무리하게 된다.
베토벤이 음악계 선배들의 영향을 받아 모방적인 음악을 만들던 시기를 벗어난 첫 작품으로 평가되는 이 곡은 그만의 강한 개성과 힘의 균형이 훌륭하게 나타나는 곡이다. 후에 바그너는 이 곡의 4개의 악장을 '활동, 비극, 정적의 경지, 사랑'이라고 평하면서 참된 베토벤의 모습이 이 곡 안에 다 있다고 했다.
추천음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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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카를 뵘,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1961, DG.
가장 권위 있는 ‘에로이카’ 해석가로 군림했던 푸르트벵글러의 웅혼하고 격정적인 연주에 도전장을 던졌던 음반이다. 한마디로 말해, 해석의 객관성을 시종일관 견지하면서, 약간 투박한 분위기의 테이블에 ‘에로이카’를 올려놓고 있다. 연주의 표정은 무뚝뚝하다. 어떤 이들은 카를 뵘이 묘사하는 영웅의 모습이 어딘지 맥 빠져 보인다고 느낄 수도 있다. 사운드도 메마른 느낌을 주는 게 사실이다. 푸르트벵글러가 보여줬던 과감한 해석, 호방한 낭만성과는 거리가 있는 연주다. 카를 뵘의 템포 설정은 비교적 느린 편에 속하지만, 이 녹음에서는 의외로 잰걸음의 연주를 선보인다는 점도 특이하다. 그럼에도 이 음반이 오래도록 필청 음반으로 자리해 온 것은 엄연한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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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카라얀,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1977 & 1984, DG.
음악을 듣는 이유가 쾌감을 느끼기 위한 것이라면 카라얀의 ‘에로이카’가 제격이다. 생전의 카라얀은 이 교향곡을 여러 차례 녹음했지만, 그 어떤 것에서도 ‘영웅의 드라마’라는 특유의 콘셉트를 놓치지 않고 있다. 그중에서도 특히 1977년과 1984년 녹음이 전체적 완성도에서 가장 높은 평가를 받는다. 강약과 속도의 대비를 한껏 끌어올리면서 드라마틱한 느낌을 극대화하고 있다. 카라얀의 음반답게 ‘음향’이라는 측면에서도 나무랄 데가 없다. 어떤 이들은 카라얀이 보여주는 ‘지나치게 매끄러운 이음새’에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기도 하지만, 적어도 ‘에로이카’를 연주할 때의 카라얀은 과도한 레가토를 적절히 다스리면서 음악의 본질에 집중하려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에 대한 호불호와 상관없이 한번쯤 거쳐야 할 음반임에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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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3. 파보 예르비, 도이치 카머필하모니 브레멘, 2005, RCA.
비교적 근래에 ‘에로이카’를 녹음한 지휘자들로는 리카르도 샤이, 파보 예르비, 크리스티안 틸레만 등이 떠오른다. 우열을 가리기가 쉽지 않지만, 오늘은 파보 예비의 날렵한 연주를 권한다. 왕년의 거장들이 지휘한 ‘에로이카’에 익숙한 감상자라면, 1악장 첫머리를 듣는 순간 빠른 템포에 약간 당황할 수도 있겠다. 최근의 베토벤 교향곡 해석이 과거의 ‘낭만 과잉’에서 벗어난 것은 분명해 보인다. 그 과정에서 큰 역할을 담당했던 해석가들은 당연히 원전연주 계열의 지휘자들이었다. 1980년대 후반에 정점에 달했던 그 흐름은 이제 현대악기로 연주하는 오케스트라와 지휘자들에게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파보 예르비가 지휘한 ‘에로이카’가 바로 그 지점을 잘 보여준다. 소규모 편성의 카머오케스트라와 함께, 리듬을 한층 강조하면서 간결하고 산뜻한 연주를 펼쳐낸다. 음악의 윤곽을 뚜렷하게 드러내고 있다는 것이 무엇보다 강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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