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c Blitzstein Airborne Symphony
Leonard Bernstein(Conductor) New York Philharmonic
INTRODUCTION Totla Time : 53:27
Marc Blitzstein(1905~1964)
블리츠슈타인은 필라델피아에서 태어났다. 부유한 집안에서 자란 그는 어린 시절부터 음악에 대한 재능이 남달랐다. 일곱 살 때에 모차르트의 피아노협주곡을 연주할 정도였다. 피아노에 뜻을 둔 그는 알렉산더 실로티(Alexander Siloti)에게서 피아노를 배웠다. 실로티는 리스트와 차이코브스키의 제자였다. 커티스음악원에서 작곡을 공부한 그는 유럽으로 건너가 베를린에서 아놀드 쇤베르크로부터 현대음악에 대한 작곡을 공부했으나 서로 뜻이 맞지 않아 파리로 가서 나디아 블랑제(Nadia Boulanger)로부터 본격적인 작곡수업을 받았다. 정치적으로는 공산주의사상에 젖어있던 그였지만 예술에 있어서는 자기중심적이었고 포용심이 부족한 편이어서 ‘진정한 예술은 지성인과 엘리트만을 위한 것이다’라는 주장을 했다. 이같은 주장은 어찌 보면 음악가와 청중 사이에 커다란 간격을 만들어 주는 것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음악은 높은 평가를 받았다. 그의 이름을 떨치게 해준 오페라는 정치성향의 오페라 The Cradle Will Rock(요람은 흔들린다)였다. 이 오페라의 초연은 명배우 겸 영화감독인 오손 웰스가 직접 무대감독을 맡아서 더 화제가 되었다. 1939년 그는 레오나드 번슈타인을 처음 만났고 그로부터 두 사람은 음악은 물론 개인적으로도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게 되었다. 블리츠슈타인는 동성연애자였지만 에바 골드베크라는 당시 사교계의 유명 여류와 결혼하였다. 에바는 블릿츠슈티인의 사회적 음악활동을 적극적으로 후원한 내조자였다. 에바는 사람들에게 자기들의 결혼생활이 지극히 정상적이라고 말했지만 에바는 얼마 후 극심한 정신질환에 시달려야 했고 급기야 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블릿츠슈타인이 받은 충격은 컸다. 그는 슬픔을 잊기 위해 작곡에 전념하였다. 주로 사회고발적인 정치성향의 작품을 썼다. 재능 있는 음악가 블릿츠슈타인의 말년은 비참하였다. 알콜 중독이 된 그는 1월의 어느 밤, 술집에서 술을 마시다가 포르투갈 선원들에게 폭행을 당하고 모든 것을 도둑맞았다. 새벽에 경찰이 길 한가운데서 피를 흘린채 울부짖고 있는 그를 발견하고 병원으로 옮겼으나 하루를 넘기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블릿츠슈타인의 마지막 작업은 단막짜리 오페라 두 편을 완성하는 것이었다. Idiots First(바보들 우선)와 The Magic Barrel(마술 술통)이었다. 메트로폴리탄이 의뢰한 작품이었다. 이들 오페라는 당시 무정부주의 좌익운동으로 체포되어 끝내는 사형에 처해진 니콜라 사코(Nicola Sacco)등 이탈리아 이민자들의 얘기를 주제로 한 것이었다. 글 출처 : web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