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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버지와 나 / 신해철

    2024.05.09 11:36

    오작교 조회 수:24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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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버지와 나 / 신해철

     

     

    아주 오래전 내가 올려다본 그의 어깨는

    까마득한 산처럼 높았다

    그는 젊고 정열이 있었고 야심에 불타고 있었다

     

    나에게 그는 세상에서 가장 강한 사람이었다

    내 키가 그보다 커진 것을 발견한 어느 날

    나는 나 자신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서서히 그가 나처럼

    생각하지 않는다는 걸 알았다

    이 험한 세상에서 내가 살아 나갈 길은

    강자가 되는 것뿐이라고 그는 얘기했다

     

    난, 창공을 날으는 새처럼 살 거라고 생각했다

    내 두발로 대지를 박차고 날아올라

    내 날개 밑으로 스치는 바람 사이로

    세상을 보리라 맹세했다

    내 남자로서의 생의 시작은

    내 턱 밑의 수염이 나면서가 아니라

     

    내 야망이, 내 자유가 꿈틀거림을 느끼면서

    이미 시작되었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대답하지 않았다

     

    저기 걸어가는 사람을 보라

    나의 아버지, 혹은 당신의 아버지인가?

     

    가족에게 소외받고, 돈 벌어 오는 자의 비애와

    거대한 짐승의 시체처럼 껍질만 남은

    권위의 이름을 짊어지고 비틀거린다

     

    집안 어느 곳에서도 지금 그가 앉아 쉴 자리는 없다

     

    이제 더 이상 그를 두려워하지 않는 아내와

    다 커버린 자식을 앞에서

    무너져가는 모습을 보이지 않기 위한

    남은 방법이란 침묵뿐이다

     

    우리의 아버지들은 아직 수줍다

    그들은 다정하게 뺨을 부비며

    말하는 법을 배운 적이 없었다

    그를 흉보던 그 모든 일들을

    이제 내가 하고 있다

     

    스폰지에 잉크가 스며들 듯

    그의 모습을 닮아 가는 나를 보며,

    이미 내가 어른들의

    나이가 되었음을 느낀다

     

    그러나 처음 둥지를 떠나는 어린 새처럼

    나는 아직도 모든 것이 두렵다

    언젠가 내가 가장이 된다는 것

    내 아이들의 아버지가 된다는 것이 무섭다

     

    이제야 그 의미를 알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누구에게도 그 두려움을

    말해선 안된다는 것이 가장 무섭다

     

    이제 당신이 자유롭지 못했던

    이유가 바로 나였음을 알 것 같다

    이제, 나는 당신을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것은 오랜 후에,

    당신이 간 뒤에, 내 아들을

    바라보게 될 쯤에야 이루어질까

     

    오늘밤 나는 몇 년 만에 골목을 따라

    당신을 마중 나갈 것이다

     

    할 말은 길어진 그림자 뒤로 묻어둔 채

    우리 두 사람은 세월 속으로

    같이 걸어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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