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곡을 표절했다는 오명을 쓴 작곡가
2021.08.28 11:15
비발디는 『사계』라는 유명한 작품이 잇는데도 ‘과연 훌륭한 작곡가가 맞는가?’라는 날카로운 비평의 도마에 자주 오르내리곤 합니다. 왜 이런 이야기가 나왔는지 찬찬히 살펴볼까요?
베네치아 피에타 보육원에 부임한 비발디는 그곳에서 삼십 년 정도 근무하는데, 이 시기에 대표곡을 거의 다 작곡합니다. 편성이 크고 쓰는 데 힘이 많이 들어가는 협주곡만 500곡 이상 남길 정도로 작곡 속도가 엄청나게 빨랐다고 해요. 그러니까 걸핏하면 ‘신곡 발표!’ 그리고 얼마 안 가서 ‘짠! 나 또 썼다! 또 발표한다!’ 이런 식이었던 거죠. 이것만 보면 ‘역시 천재구나, 세상에 대단한 사람이 너무 많아.’라고 생각할 것이 분명합니다. 하지만 비발디에게 다작(多作)은 그다지 좋은 수식어가 아니었어요. 짧은 기간에 너무 많은 곡을 썼기 때문일까요? 새로 쓴 곡들이 전에 발표한 곡과 비슷한 경우가 많아서 <자기 곡을 표절하는 작곡가>라는 부끄러운 별명을 얻게 됩니다.
몇 곡 비교해볼까요? 비발디의 작품 번호은 Op, 말로 R.V,라는 <뤼옴 번호>로도 분륲하는데 편의상 R.V,를 사용하겠습니다.
첫 번째로 살펴볼 표절곡은 R.V.179의 3악장과 R.V.180의 1악장 일부분입니다. 악보만 봐도 멜로디가 아예 똑같은 것을 알수 있죠? 음악을 감상해 보시면 화성 진행 방향 또한 똑 같습니다.
도입부가 유사한 곡도 많은데, R.V.459번의 1악장과 3악장은 대놓고 똑같아요. 한 곡에서 꼭간은 악장이 반복되는 것을 작곡가가 인지하지 못했던 거죠. 뭐 같은 사람 머리에서 나온 거니까 어쩔 수 없다 싶으면서도 씁쓸한 마음이 드는 것은 기분 탓일까요?
최근 대중음악에서도 이런 경우를 자주 볼 수 있습니다. 너무 비슷한 분위기의 곡들이 쏟아지다 보니 ‘어? 이거 그 작곡가가 썼나 보다.’ 생각하고 찾아보면 맞는 경우가 대부분이죠. 이런 식의 자가 복제는 작곡가의 몸값을 단기간에 올려 줄 수는 있지만, 길게 보면 창작자의 한계를 여실히 드러내기 때문에 꼭 좋은 것만은 아닙니다. 그래서 이렇게 대중적인 클래식 곡을 남긴 비발디도 ‘자기 표절’이라는 오명을 피할 수 없게 된 거겠죠.
댓글 0
번호 | 제목 | 글쓴이 | 날짜 | 조회 수 |
---|---|---|---|---|
공지 | 클래식 음악야화의 공간을 만들면서 | 오작교 | 2021.08.28 | 1400 |
14 | 단 하나인 명예로운 칭호, <음악의 아버지> / 추천곡 프렐류드 1번 | 오작교 | 2021.12.11 | 1054 |
13 | 현란한 곡 때문에 교회에서 찍히다 / 추천곡 브란덴부르크 협주곡 3번 | 오작교 | 2021.09.18 | 1117 |
12 | 두 번의 사랑과 스무 명의 자식들 / 추천곡 III 미뉴에트 G장조 BWV 114 | 오작교 | 2021.09.03 | 1053 |
11 | BMW가 아니고 BWV / 추천곡 II 칸타타 147 - BWV 147 - Coral | 오작교 | 2021.09.03 | 1053 |
10 | 명문 음악가 집안에서 난 신동 / 추천곡 토카타와 푸가 d단조 BWV 565 | 오작교 | 2021.09.03 | 1058 |
9 | 바흐? 바하? 뭐라고 불러야 하죠? | 오작교 | 2021.08.29 | 1055 |
8 | 바흐 - 3B의 제일 큰형 | 오작교 | 2021.08.29 | 1079 |
7 | 성직자의 안타까운 끝 / 추천곡 '세상에 참 평화 없어라' | 오작교 | 2021.08.28 | 1063 |
6 | 박찬욱 감독의 비발디 사랑 / 추천곡 'Ah, Ch'infelic Sempre' | 오작교 | 2021.08.28 | 1000 |
5 | 당신은 어느 계절을 좋아하시나요? / 추천곡 '사계' | 오작교 | 2021.08.28 | 1075 |
» | 자기 곡을 표절했다는 오명을 쓴 작곡가 | 오작교 | 2021.08.28 | 1069 |
3 | 그 시절, 직업 23개를 겸했다고? / 추천곡 『조화의 영감』 Op.3. No.6 | 오작교 | 2021.08.28 | 1048 |
2 | 비발디 - 병약하게 시작한 바로크 거장의 첫걸음 | 오작교 | 2021.08.28 | 1108 |
1 | 1악장 바로크 시대 | 오작교 | 2021.08.28 | 107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