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식스 한국적 록 아티스트 HE 6
2013.11.06 15:42
한국적 록아티스트 자부심으로 똘똘 --히식스 (HE6)에 대하여
서유석 양희은이 모던포크시대를 활짝 열었다면 HE5, 6은 그룹사운드시대를 주도했다.
에드훠를 제외한 대부분의 초기 록그룹들이 외국곡만을 고집했다면 HE5, 6은 <초원> <당신은 몰라> <메아리> <초원의 사랑> <초원의 빛> 으로 이어지는 주옥같은 히트 창작가요들을 발표해 대중들의 절대적인 지지와 호응을 이끌어냈다.
또한 인기와 돈만을 위해 활동하기보다는 음악발전을 위해 수입의 상당부분을 그룹전용 최첨단 PA(음향장비)에 아낌없이 투자할 줄 알았던 의식있는 아티스트들이었다.
유명 여가수 장세정의 아들인 포 가이스의 리더 한웅, 신중현과 조커스의 조용남은 HE5 창립1등공신.
이들은 1967년 화양에이젠시소속 미8군 빅밴드들의 예비오디션때 악기별로 뛰어난 각팀의 연주자들만을 선발하여 새로운 록그룹 창립을 꿈꿨다. 이때 선발된 멤버는 후에 영사운드의 리더가 되는 실버코인스의 보컬 유영춘, 드럼 김용호, 베이스 한광수. 촉망받던 세션들의 이탈로 인해 미8군 빅밴드들은 평지풍파로 휘청거렸을 정도.
하지만 멤버전원이 신인이라는 한계 때문에 강력한 카리스마를 지닌 팀 리더의 필요성을 절감했다.
인기정상의 키보이스 리드기타 김홍탁은 영입하고 싶은 1순위대상.
때마침 키보이스의 음악노선에 갈등을 느끼고 있던 김홍탁은 지미 헨드릭스, 산타나 처럼 비트 강한 음악들을 시도해보고 싶어 HE5 창립멤버들의 연습에 동참했다. 멤버들은 깁슨기타를 선물로 주는등 세심한 정성을 들였다.
김홍탁은 당시로서는 생소한 ‘멤버 전원이 합숙훈련을 해야 한다’는 까탈스런 조건을 내걸고 그룹에 합류했다.
새로운 리더 김홍탁은 인천 출신. 미국에 사는 삼촌이 중학교 입학선물로 보내온 최고급 펜더기타는 늘 음악친구들의 부러움을 샀다. 사설 기타강습소에서 기초를 익히던 중 동산고 1학년때 친구집 2층에 살던 미8군악대 기타리스트 척(CHUCK)을 졸라 본격적인 부기스타일의 기타주법을 배웠다.
그의 연주가 본토의 ‘버터냄새가 난다’는 이유는 바로 이 때문.
내친김에 밴드부원인 학교동창생 장동선, 이백선 등을 모아 5인조 그룹 캑터스(선인장)를 결성했다.
고2때는 미8군 하우스밴드 오디션에 합격, 부평 미군하우스에서 연주활동을 하는 대담성과 더불어 천재성을 보였다. 김홍탁은 이때의 뛰어난 활동으로 키보이스에 스카웃되었던 기타 신동이었다.
김홍탁이 HE5에 합류했을 때 멤버의 변동이 있었다. 준시스터즈의 오영숙과 사실혼 관계에 있던 베이스 한광수는 군기피자였다. 자수하여 참전한 월남에서 그는 애인의 변심소식에 울화병으로 숨지는 아픈 사연을 지니고 있다. 그래서 HE5는 리드기타에 김홍탁, 리드기타였던 조용남이 베이스로 자리를 옮겼다.
새롭게 의기투합한 이들은 이태원 미군전용 세븐클럽을 주무대로 오복여관에서 합숙을 하며 낮에는 음악연구, 밤에는 피나는 연습 끝에 데뷔앨범 <초원-신세기.68년 추정>을 발표하며 대중들속으로 다가섰다. 데뷔곡 ‘초원’은 뜨거운 반응을 불러왔다.
연이어 발표한 12분15초의 사이키델릭 롱버전 연주곡 ‘징글벨’이 수록된 <메리크리스마스 사이키데릭사운드-유니버샬, THL8016, 69년> 과 번안곡 음반. 그리고 더블자켓으로 이승재의 ‘눈동자’가 함께 수록된 . 이중 캐롤연주음반은 마니아들 사이에 150만원에 거래된 기록이 있는 초희귀판이다.
멤버들도 이 음반을 다시보고 감격했을 정도로 한정된 수량이 발매됐던 실험적 음반. 그룹전체의 하모니를 중시한 이들의 경쾌하고 시원한 사운드의 노래가락은 68년 동양라디오를 통해 생방송된 덕수궁 야외공연을 기점으로 69년 1회 플레이보이배 그룹사운드 경연대회에서 키보이스에 이어 은상을 차지하며 단숨에 인기그룹의 반열에 올랐다.
숨겨진 일화하나. 68년 HE5는 서울대 미대생들로부터 ‘설악산등반과 함께 대청봉에서 공연을 하자’는 엉뚱한 제의를 받았다.
특히 비슷한 연배인 대학생들로부터 열광적 지지를 받고 있던 터라 젊은 멤버들은 기꺼이 엄청난 장비를 짊어지고 2년이나 대청봉 등반길에 동행했다. 업소의 만류에도 불구 이들은 돈 한푼도 받지 않고 고행길을 즐거운 마음으로 나섰다.
‘전설적인 포크가수로 등극할 김민기와도 함께 가슴을 열고 노래를 불렀던 당시는 잊을 수 없는 추억으로 남아있다’고 팀 리더였던 김홍탁은 회고한다. 당시 서울대 미대는 이때의 감사함을 ‘명예졸업장수여’로 대신했다.
HE5, 6멤버들은 최고라는 자부심이 멤버 모두에게 강력하게 심어져 있었다.
이들은 수많은 멤버교체 끝에 해체 일보직전의 아픔을 딛고 더욱 탄탄한 팀웍으로 사상 최고의 인기그룹 HE6로 거듭났다.
멤버들의 독립과 수입문제로 흔들렸던 H5. 고별공연으로 해체의 수순을 밟는 듯 했지만 오히려 멤버 보강작업을 가하며 더욱 탄탄한 HE6로 거듭났다.
이때가 1970년초. 창립자 한웅은 서울미대 여학생과 함께 미국으로 이민을 갔고, 유영춘은 영사운드를 창립하며 독립했다.
이들의 공백은 남성 포크듀오 투에이스의 오승근과 홍순백이 메워보려 했지만 음악적 이질감으로 이내 탈퇴, 그 자리를 미키즈의 리드보컬 이영덕과 절친한 친구인 세컨 기타 김용중이 자리했다.
여기에 송민영악단에서 활동하던 플룻 섹소폰주자 유상윤까지 가세하며 6인의 새로운 라인업, HE6 오리지널 멤버가 구성되었다. 1집발표후 세컨기타 김용중은 재즈쪽으로 음악변신을 해 최헌이 세컨기타겸 보컬로 1970년 후반에 영입되었다.
HE6의 주무대는 명동의 오비스 캐빈. 당시 이곳은 2층엔 포크, 3층에 선록을 연주했던 전문 음악감상실로 젊은이들의 명소로 명성이 자자했다. 3층입구에 걸려있던 실물크기의 대형 캐리커쳐. 바로 오비스캐빈의 대표 록그룹 HE6멤버들의 연주모습이였다. HE6는 콘서트형식으로만 연주할 뿐, 당시 유행하던 고고장의 전속밴드화하는 것을 경계했다.
닐바나 등 최고급 GOGO클럽 등에서 고액의 개런티로 유혹했지만 고집스레 원칙을 지켜 나갔다.
이미 30년전에 '사운드를 받쳐주지 못하고 음악적 컨셉이 아닌 오락위주의 TV프로그램엔 출연하지 않겠다'는 거부선언을 했던 HE6.
이런 자존심은 대학생들과 젊은층의 절대적 지지와 호응을 이끌어냈다. 미디어매체보다는 팬들과의 직접적인 대면을 선호했던 이들은 전국대학가를 돌며 순회공연까지 벌였다.
1970년 춘천의 성심여대 공연때는 강의실 책상에 멤버 이름이 도배되어 있었을 정도로 절정의 인기를 누렸다.
이들은 기성세대들이 장발문화를 주도했던 대부분 록그룹들을 퇴폐의 주범으로 단속했던 것과는 달리 짧은 머리 깔끔한 복장으로 오히려 사랑받았던 특이한 그룹이었다.
69년부터 3년간 개최되었던 전국그룹사운드 경연대회. 록그룹의 발전을 불러왔던 이 대회는 장안의 화제였다.
특히 후기 키보이스와 HE5, 6의 정상다툼은 그룹사운드시대의 열기를 한껏 달아오르게 했다.
1회 플레이보이배때는 키보이스가 정상을 차지했고 2회 대회와 주최사가 교체된 71년 1회 선데이서울컵에서는 HE6가 연달아 그랑프리를 차지했다. 김홍탁은 개인연주상을 수상하며 절정의 기량을 뽐냈다. 재미있는 것은 이 대회에 참가한 3인조 '김트리오'의 리드싱어 조용필의 가수왕 수상 사실이다.
HE6의 첫음반. 창작곡 <초원의 사랑>, <말하라 사랑이 어떻게 왔는가를> 등은 록사운드의 대중시대를 본격적으로 열었던 히트곡들.
2집은 최고급 워커힐 빌라를 빌려 합숙훈련하며 발표해 다른 그룹들의 부러움을 샀던 앨범이다. 2집의 히트곡은 상큼한 감각의 <물새의 노래>, <초원의 빛>.
3집은 HE6가 대중적 인기에만 연연한 그룹이 아님을 증명하는 불후의 연주명반이다.
마치 한국의 산타나를 연상시키는 타악기와 플루트 등이 가미된 프로그레시브한 창작사운드는 신중현의 연주곡집들보다 훨씬 더 음악적으로 앞선 환상적 음악세계를 유감없이 펼쳐 보인다.
특히 오비스캐빈 입구에 걸려있던 멤버들의 연주모습 캐리커쳐가 수록된 귀한 음반이기도 하다. 리더 김홍탁은 "우리가락과 록을 접목한 창작연주음반이 한 장 더 있었음'을 귀띔해 준다.
5집은 불후의 명곡 <당신을 몰라>가 수록된 HE6 음악의 결정판.
최헌이 들려주는 허스키하면서 맛깔난 보컬이 돋보이는 이 음반은 마니아들이 가장 선호하는 희귀음반이기도 하다.
특히 14분28초라는 초유의 롱버전 번안곡 <아름다운 인형(GetReady)>은 RARE EARTH의 원곡을 능가하는 재해석 능력을 발휘했다.
72년 가을, 리더 김홍탁은 본고장의 음악을 체험하고 익히기 위해 미국샌프란시스코 베이 재즈아카데미로 유학길에 올랐다. HE6는 정훈희의 오빠 정희택을 영입하며 다시 HE5로 돌아갔지만 더 이상의 영화를 누리지는 못하고 최헌의 그룹창립을 위한 독립과 더불어 사라져갔다.
음악인생 40년을 앞둔 김홍탁은 현재 서울재즈아카데미 원장으로 재직하고 있다.
요즘 그는 '한국록 명예의 전당 건립과 우수 록그룹시상식 제정'에 혼신의 힘을 쏟고 있다. '한국록그룹협회도 조만간 재발족될 예정'임을 전해주는 그의 표정에서 한국록의 부활을 위한 작은 꿈틀거림이 느껴진다.
뒤늦었지만 신중현은 업적에 걸맞는 재평가를 받고 있듯, 탄탄한 팀웍에서 일궈낸 음악적 실험성과 그룹사운드시대를 만개시켰던 HE6도 한국을 대표하는 록그룹으로 재평가 받아야 마땅하지 않을까!
-최규성 가요칼럼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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