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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zz의 과거와 현재

2014.03.13 20:25

오작교 조회 수:7650

재즈는 대중음악의 꽃이라 할 수 있는 고차원적인 음악장르이면서 또한 지구촌 마을에 급속히 파고드는 첨단음악이라 할 수 있다. 역사도 70여년이 지나고 있는 성숙 한 시기에와 있으며 세계 곳곳에 재즈음악의 종류가 무수히 다양해지고 또한 많은 재즈스타 들이 배출되고 있다.

 

재즈를 음악적으로 살펴보면 7도 이상의 텐션코드를 사용하며 자유로운 애들립을 많이 구사 하는 음악이다. 뿐만 아니라 '재즈적인 요소'들과 재즈음악의 또 하나의 기법인 싱코패션 을 많이 사용하는 'OFF BEAT' 또한 재즈의 매력을 한층 더해주는 요소들이다. 재즈는 한이 많은 민족인 흑인들의 민속음악에서 미국의 대중음악으로 발전되었고 세계적인 장르가 되었다.

 

음악의 모체인 클래식음악이 작품에 중점을 많이 두는 것에 비해 재즈 음악은 작품성보다는 연주자의 능력과 연주매력에서 그 본질을 찾을 수 있으며 완성된다고 볼 수 있다. 또한 연주자들이 가장 자유스러운 표현으로 무아지경에 빠져드는 모습과 그러한 그들의 애드립을 감상하는 것이 재즈음악의 백미라 할 수 있다. 시대의 흐름에 따라 재즈음악도 많이 변해 왔고 발전돼 왔으며 계속해서 다양한 장르로 발 전되고 있는데 장르별로 살펴보도록 하겠다.

 

스 윙 (Swing)

 

스윙 에이트 느트 패턴(swing eight-note pattern)의 채용, 스트링 베이스나 하이 해트 심벌의 도입, 그리고 보다 자유롭고 매끄러운 리듬감의 발전과 함께 1920년대 후반부터 재즈는 점점 스윙하게 되었다. 이 시대부터 재즈는 스윙 음악(Swing music)이라고 부르는 시대를 맞는다. 이 시기에는 10인 이상의 멤버에서 이루어지는 연주가 대부분이었기 때문에 빅 밴드 시대(big band era)라고도 부른다.

 

예전의 빅 밴드 음악에는 임프로비제이션이 없는 경우가 많았고 미리 씌어진 악보를 연주하는 경우에 많았다. 그러나 임프로비제이션을 주된 기술로 하는 음악가들에게도 많은 일자리가 제공되었기 때문에 재즈에 있어서는 매우 좋은 시대였다. 몇 개의 밴드, 특히 카운트 베이시 밴드는 임프로비제이션에 중점을 두고 있었지만 다른 대부분의 밴드는 임프로비제이션에 그다지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던 것도 사실이다. 그 대부분은 무드 음악과 같은 '달콤함'을 상품으로 하는 밴드로서 가이 롬바도, 로렌스 웰크 등이 유명하다.

 

재즈는 역사상에 나타난 이래 댄스를 위한 음악으로서의 성격을 항상 갖고 있었으며 스윙 시대만큼 그러한 성격이 강조된 시대는 없었다. 그 후의 시대에는 재즈 그룹이 음악을 감상하는 목적으로 모이는 청중을 위해 연주하는 것은 매우 보통의 일이 되어 버렸지만 당시는 그러한 것이 아주 드물게밖에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러나 1938년에 베니 굿맨은 카네기 홀에서 콘서트를 열었고, 1943년 이후 듀크 엘링튼은 매년 정기 콘서트를 열게 되었다. 재즈의 역사에서 이 스윙 시대라는 것은 재즈가 대중적 인기의 중심이 된 드문 시기였다. 카운트 베이시가 데카(Decca)에서 취입한 의 판매는 백만 매가 넘었으며, 듀크 엘링튼의 도 상당한 매수를 팔았다. 1950년대 및 60년대 록 밴드의 주역할은 댄스를 위한 음악을 제공하는 것으로 1930년대의 스윙 밴드의 역할과 같은 것이었다.

 

비밥 (Bob,Bebob)

 

1) 비밥재즈의 발생

 

비밥의 탄생은 흑인 음악가들이 스윙재즈에서 재즈 특유의 특징이 엷어진 것에 불만하여 새로운 스타일의 재즈를 구축한 것으로서 종래의 그 어느 재즈보다도 아프리카적인 요소를 많이 포함하고 있다고 보겠다. 밥재즈 시대를 연 음악가로는 찰리 파커(Charlie Parker,색소폰)를 대표자로 들 수 있다.

 

그러나, 현재 그가 유명세를 떨치는 것에 비해,밥재즈 초기는 매우 특이하고 독창적인 성격이 너무 강해서인지, 대중의 호응을 받지 못했다. 즉 음색이 대단히 강하고 자극적이며,화음에 있어서도 감화음이라든가 7,9,11도 화음을 사용하였고,템포가 의외로 빠른 편이며,율동감도 별로 갖고 있지 못했다. 이와같이 난해하고 충격적인 비밥 재즈는 예술성이 강하여 예술음악으로 인정받게 되었다. 그런 의미에서,비밥 이전의 재즈를 비밥에 대칭된 의미로, 전통재즈 혹은 고전재즈(Traditional Jazz,Classical Jazz)로 부른다.

 

비밥재즈가 예술재즈로 등장하게 됨으로써 1945년경 부터는 재즈의 세계도 민요(지방 블루스,도시 블루스,대도시의 흑인을 중심으로 하는 리듬과 블루스,뉴올리안즈 재즈),춤과 오락음악(딕시랜드,스윙,예술음악(비밥 )등 많은 것으로 분류되게 되었고 각각 그 특징을 살려 계속 발전하게 된다.

 

2) 비밥재즈의 음악적 특징

 

비밥 재즈는 전술한 바와 같이 매우 혁신적인 성격을 보여준다.

우선 즉흥성이 매우 강하므로 솔로들이 몇명만 모여 만들어진 캄보 밴드 (Combo Band) 형태를 취하고 있다.(색소폰,트럼펫,피아노,콘트라 베이스,드럼). 비밥재즈에서 특이한 점은 피아노가 리듬악기로 등장하여 화음을 받쳐주는 역할을 하고, 드럼은 박자를 집어주는 리듬악기로서가 아니고 독자적인 리듬형태를 보유하여 기교적인 면을 강조함으로써 멜로디 악기와 동등한 관계를 보여준다. 거친듯한 음색,현대적인 화음구성과 함께 8분음표 또는16분음표로 계속되는 빠른 리듬은 거칠고 강하며 전율적이다.

 

쿨재즈(COOL JAZZ)

 

1) 쿨재즈의 발생

 

1945년 제2차 세계대전이 종결된 후 전쟁 중에 견디기 어려울 만큼 팽배했던 긴장감이 완화되면서, 미국 사회에는 인종문제 등이 아직도 해결 안된 불쾌한 현실로 부상되어 사람들은 허탈감과 울적함에 젖어들기도 하고, 또 한편으로는 전후의 혼란한 시기를 거치면서 마음을 가다듬고 진정하는 움직임을 보여준다.

 

이 시대의 시대감정을 표현하자면 "(영어에서 GOOD의 속어 정도)"인 것이다. 위와 같은 현상은 재즈계에도 여실히 나타난다. 전통재즈는 비브라토를 수반한 강렬한 음향과 더불어 춤과 연결되는 율동적인 리듬이 필수적이었으며,사람들은 춤을 추면서 그리고 술을 마시면서 재즈를 즐기는 형태가 보편적이었다. 그러나 "쿨시대"에 접어들면서 재즈는 정반대화되는 새로운 현상을 보여준다.

 

1950년대에 들어오면서부터 재즈 음악계에는 정식 음악수업을 받은 음악가들이 점점 많이 출현하게 되었다. 이들은 재즈에 클레식 음악기법인 화성법,나아가서 12음기법 등을 결합시키면서 재즈와 클래식의 접합을 시도하였고, 그들은 또한 재즈를 클래식과 동등한 위치로 끌어올려 클래식 계통에서도 자신들의 활동을 정식으로 인정하게 되기를 원했다.

 

그들이 추구하는 음향은 비브라토가 없이 부드러우며,자극이 없고,서정미가 있는 현대적인 음향이라고 할 수 있다. 이로써 사람들에게 드디어 재즈를 춤과 술과 혼합하여 생각하지 않고,조용히 앉아서 진지하게 감상하는 고급적인 음악으로 인식을 바꾸게 하는 계기가 마련된 것이다.

 

2) 쿨재즈의 음악적 특징

 

쿨재즈는 위에서 잠시 언급한 바있지만 클래식 음악의 형식에서 화성법,대위법,목조성(POLYTONAL),무조성주의 등을 차용하여 음악적으로 수준이 한결 높아짐과 동시에 음악회용 음악 즉 감상음악으로 대두되게 되었다. 쿨재즈의 음향적 특색은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1) 비브라토와 다이내믹이 절제되었으며 부드러운 음색이다.

(2) 멜로디의 움직임이 이완되어 있어 매끄럽고 스마트한 느낌을 준다.

(3) 서정성과 함께 멜랑콜리한 표현이 많다. 그러나 리듬은 핫재즈나 마찬가지로 강렬하다.

(4) 클레식에서 받아온 엄격한 음악형식 때문에 즉흥적인 면이 감소됨을 보여줌.

(5) 캄보밴드 스타일이 지배적이다. (색소폰, 트럼펫, 피아노, 기타, 콘트라베이스, 드럼)

 

'한 감각이라든가 음악 형식면에서 클래식을 접합시키는 방법은 같으나 음악적 표현이 종래의 비밥(Bebop)을 이어받아 좀 거친듯한 재즈의 형태로 하드밥(Hard-Bop)이 있다.

 

하드밥은 1950년 이후에 출연하여 순수 쿨재즈와 공존하였는데, 50년대 말 경에는 하드 밥과 쿨의 경계선을 알아보기가 힘들게 되었고 60년대를 넘어 가면서는 음악형식에 있어서 클래식 형식 뿐 아니라 스페인과 남아메리카의 리듬, 아랍이나 인도의 음계와 리듬 등을 받아 재즈는 음악적으로 더욱 다양하고 표현영역이 넓혀지는 현상을 보여준다.

 

하드밥은 백인에 의해서 미국 서부 해안에서 시작된 웨스트코스트 재즈(West-Coast-Jazz)와 뉴욕의 젊은 흑인들에 의해서 시작된 이스트코스트 재즈(East-Coast-Jazz)를 합쳐서 일컫는 말이다. 하드밥은 비밥처럼 재즈에 있어서 흑인적인 요소를 더욱 강조함으로써 음향이 거칠고 폭발적이며, 타악기를 강조하고, 표현력이 강하며 단순하다. 따라서 활력이 넘치며 블루스와 흑인영가를 떠오르게 하는데, 여기에서는 블루스가 체념하는 형태가 아니라 말 그대로 '폭발하는' 형태를 취한다. 이런 연주형태를 특히 "펑크(Funk)"라고 부르기도 한다.

 

프리재즈

 

1) 프리재즈의 발생

 

프리재즈의 본격적인 출발은 1950년대 말 경에 젊은 흑인 재즈 큐지션들인 오넷콜맨(Ornette Coieman)과 존 콜트레인(John Coltrane)에 의해서라고 보지만, 이런 움직임은 이미 10년 전인 1949년에 쿨 피아니스트인 레니 트리스타노(Lennie Tristano)와 그의 6중주 일행에서 나타나므로 프리재즈의 출현은 갑작스러운 것이 아니다.

 

60년대에 들어서면서도 계속 악화되고 있는 흑백문제는 젊은 흑인들을 더욱 자극시키고 있었는데, 이런 불만이 젊은 흑인 음악가들에 의해서 격하고 공격적인 음악으로 표현되었다. 즉 매우 높은 음역이나 매우 낮은 음역으로 악기소리를 냄으로써 귀청이 찢어지는 듯한 날까로운 음향을 내기도 하고, 음악에서 사용하는음 뿐만 아니라 소음까지 포용하며, 서양 세계 밖에서 온 이국적인 악기를 사용하고, 즉흥적이며 도취적인 야성미를 지닌 아프리카 음악의 요소를 받아들인 여지껏 들어볼 수 없었던 새로운 연주기법과 음향이 나타난 것이다.

 

2) 프리재즈의 음악적 특징

 

프리재즈는 한 마디로 말하여 모든 전통규칙과 원칙이 파괴된, 단어 그대로 매우 자유롭고 우연적인 음악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연주가들은 개별적인 표현욕구를 구속없이 주관적으로 즉흥연주를 함으로써 이루어지므로 조성도, 박자도, 형식도 없다. 여기서 무조성이란 뜻은 서양의 음열을 기초로 하는 12음기법이라든가 하는 무조성을 뜻하는 것이라기보다는, 아무런 내부적인 규칙이 없는 것을 뜻하는데 흑인노예의 노동요와 같은 아프리카적인 무조성에 접근한다. 프리재즈는 연주 중에 연주자가 각자가 차례로 듣고 연주하는 새로운 연주 방법을 도입하였는데,이 잇달아 나오는 내부적인 반응도를 보는것이 프리재즈의 묘미다.

 

Modern Jazz

 

30년대말 Benny Goodman, Glenn Miller,Tommy Dorsey 을 필두로 많은 뮤지션 등은 -특히 백인 음악인들- 뜨거운 스윙의 열풍을 등에 업고 고소득과 명예를 얻을 수 있었다. 그 뒤 많은 음악인들이 대중들의 인기에 편승하면서 상업적인 음악이 판을 치게 되었다.

 

그러나 Lester Young, Coleman Hawkins, Roy Eldridge 등 스윙 시대의 가장 선구적인 연주자들은 새로운 음악이 태어나는데 많은 영향을 끼쳤다. 그래서 1940년경 일부 의식 있는 젊은 음악인들이 그 전과 다른 음악을 하기 시작했는데 이것이 밥이다.

 

세션형태로 연주되는 이 음악에선 재즈의 본질인 즉흥성이 강조되고 리듬파트가 보다 부각되었다. 이 전까지는 단순한 타임 키퍼 역할만을 했던 드럼이 멜로디 악기와 동등한 위치에 서게 되었다. 또 밥 스타일의 즉흥 연주는 속도가 빠르고 자유스러운 풍부한 전개였다. 멜로디 흐름도 그리 순조롭고 감미롭지 않으며 잦은 싱커페이션을 사용했다.

 

밥 연주인들은 자신의 즉흥연주를 위해 멜로디 진행보다 코드 진행에 더 중점을 두는 것 같다. Charlie Parker (as), Dizzy Gillespie (tp), Thelonious Monk (p), Kenny Clark (dm) 으로 대변되는 밥 스타일은 Miles 70`Bitch's blew'가 발표되기 전까지의 모든 재즈의 유형이라 볼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빅 밴드의 음악이나 스윙 스타일이 모두 전멸한 것은 결코 아니다.

 

빅 밴드의 음악이 40년대 중반부터 쇠퇴한 사실은 엄연한 사실이지만, 그래도 항상 대중들에게 인기있는 분야로, 별개의 존속 형태로 본다면 무난할 것이다. 2차 세계대전으로 인해 재정 상태가 곤란해진 빅 밴드들의 잦은 해체가 캄보 형태의 재즈를 형성하게 했고 밥이란 새로운 사조가 탄생하게 돠는데 큰 영향을 미쳤다는 생각도 무리는 아닐 것이다. 이러한 여러가지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해서 밥이란 음악은 뿌리를 내리게 되었다.

 

40년대는 모던 재즈의 서막을 여는 시대였다. 전의 스윙은 댄스 음악으로서 대중들에게는 환영을 받았으나 음악적으로는 전체의 조화가 중심이었기 때문에 즉흥 연주를 잘하는 실력있는 음악인들에게는 불만스러웠다. 그런 그들의 정열을 만족시킨 것이 일을 마치고 몇몇이서 행했던 잼 세션이었다.

 

잼 세션은 캔사스의 흑인 음악인들에게서 많이 행해졌는데 그들 대부분이 뉴욕으로 진출함에 따라 더욱 성행되었다. 이 잼 세션의 역량있는 음악인이 바로 스윙과 모던을 이어주는 레스터 영과 찰리 크리스찬이다. 그 뒤 밤마다 클럽에서 연주되는 잼 세션은 비밥이란 혁신적인 스타일을 탄생시켰다. 그리고 모던의 시발이자 핵인 찰리 파커, 디지 길레스피, 셀로니어스 몽크는이 새로운 음악을 하나의 사조로 재즈의 주류를 이루게 하였다.

 

40년대 초의 비밥의 출현 뒤 45년 전쟁이 끝나고 나서 본격적으로 비밥이 대두되기 시작했다. 캄보 형태의 악단 구성이 정착이 된 것도 바로 이때부터이다. 경제의 불황으로 빅 밴드가 거의 자취를 감추어 버렸으나 비밥은 빅 밴드의 팬들을 흡수하지 못했다. 사실 밥이 대중들에게 인기가 없었을 수밖에 없는 이유는 너무나 간단하다. 전의 스윙에 판이하게 춤을 출 수 없다는 것이 그렇고 또 그에 따른 가수의 부족 현상도 그렇다.

 

즉흥 연주의 멜로디와 원래 곡과의 비교도 감상자에게는 어려운 문제여서 감상자가 즐길 여유가 없었다. 밥이 아무리 복잡하고 수준이 높은 연주를 추구해도 이해하지 못하는 감상자에겐 소용이 없다. 그래서 재즈는 퓨전이 나오기 전까지 미국 음악의 흐름에서특별한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다.

 

50년대는 재즈사에서 제일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초반의 쿨의 탄생과 웨스트 코스트 스타일의 형성, 그리고 하드 밥의 출현이 바로 그것이다.

 

록재즈 (Rock Jazz)

 

1) 록재즈의 발생

 

록재즈는 가장 최근에 출현한 재즈로서(70년대) 프리재즈와 함께 현재까지도 연주되고 있는 형태이다. (ROCK)이란 유럽에서 대중적인 댄스 음악으로 출발한 것으로 블루스의 특징을 많이 지니고 있으며, 로큰 롤(Rock,n Roll)의 준말이다. 록은 1960년도 중반에 나타나 가사의 예술적 표현에 보다 치중하여 즉흥연주 등은 그리 강하게 다루지 않았다.

 

비틀즈(Beatles)를 위시한 많은 그룹들은 조곡형식(Suite)의 대편성 심포니 곡을 만들기도 하였고, 또 어떤 부류들은 종래의 록을 고수하여 하드 록(Hard Rock)이란 별칭으로 불리기도 하였다. 그러나 초기의 록 그룹들은 블루스를 기초로 하였으나, 재즈와 록이 완전히 융합된 상태가 아니라 서로 엮어 놓은 상태에 불과하였고, 예술적인 면의 추구보다는 상업적인 냄새가 짙은 느낌을 준다.

 

재즈와 록이 참으로 융화되어(Fusion) 예술적인 형태를 띠면서 재즈의 발전에 기여하게 되는 것은 1960년대 말부터이다. 체이스(Chase),블러드(Blood),스위트 앤 티얼스(Sweat & Tears) 등의 그룹활동으로 시작되었는데, 이들의 음악을 스윙 록(Swing Rock)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2) 록재즈의 음악적 특징

 

위에서 일컬은 바와 같이 록재즈는 전자악기 연주로 인한 강한 음향을 특징으로하며, 음악적인 기법을 프리재즈에 기초를 두고 있다. 그리하여 매우 지적이고 전문적인 형태를 띠고 있으나, 리듬에 있어서는 모던 재즈(비밥,,프리재즈)에비하여 단순한 형태를 보여 스윙(Swing)과 비슷하나 약간 더 강하고 (예를 들면동양에서 온 순환하는 박자사용), 음향에 있어서는 전위적인 불협화음보다는 특정한 음계를 바탕으로 연주하므로 전통적인 협화음 쪽으로 흐른다. 그리고 어법에 있어서 옛 두박자 재즈부터 프리 재즈까지의 요소들은 도입하므로 연주자 모두가 각자 멋대로 즉흥연주를 하는 것보다 부드럽다고 할 수 있다.

 

20세기 클래식 음악과 재즈

 

음악학자들은 70년대부터 음악사,음악교육책 등에 암스트롱과 바흐의 이름을 나란히 올리고 있으며, 교회에서는 재즈 스타일로 예배를 드리는 것이 세계 도처에서 흔히 보여지는 광경이다. 재즈는 이렇듯 발생한 지 백년도 되기 전에 세계적으로 벌써 그 독창성과 예술성을 인정받는 한 계통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재즈가 초기의 단순한 가창 형태에서부터 이렇듯 발전하게 된 데에는 정식 음악교육을 받은 재즈 음악가들이 스윙시대 이후 대거 참여하여 (0930년대 이후) 재즈와 클레식의 접목을 시도하고, 또 이에 자극받아 재즈의 본질을 잃지 않고 살려 보려는 강한 노력들이 모여 이룩된 것이라고 보여진다.

 

즉 재즈의 발전상에는 클레식 음악의 영향이 음으로 양으로 큰 몫을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이에 반하여 20세기 클레식 음악에서도 재즈의 발자취는 강하게 느낄 수 있다. 클레식계에서 재즈에 관심을 가진 시기는 재즈가 아직 단순한 영가나 블루스의 형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던 1920년대 이전부터 드뷔시(C.Debussy,1862-1918)와 스트라빈스키(I.Strainsky,1882-1971)등의 작품에 나타난다.

 

드뷔시는'괴물의 케이크 워크'(The Gollwog,s Cakewalk,1908)의 몇 작품에, 스트라빈스키는 '어느 병사의 이야기'(L'Historire,1918)중에서 악마의춤에 그리고 11개의 악기를 위한 랙타임(Ragtime,1918) 및 피아노 랙 뮤직(Rag Music,1919)에서 재즈적 착상을 도입한 것을 볼 수 있다.

 

이 당시는 유럽에 블루스와 랙 타임이 크게 유행할 때였다고 하는데, 새로운 음향과 새로운 리듬을 찾아서 고심하던 현대 작곡자들에게 재즈의 신선하고 진기한 리듬과 끈끈한 호소력은 대단한 영감을 불러 일으켰을 듯 하다. 그후 1920년대부터 1930년대 초기까지 힌데미트(P.H imdemith,1895-1963)가 피아노 조곡 랙타임(Ragtime,1922)을 라벨(M.Ravel,1875-1937)이 피아노 콘체르토 G장조(1931)에서 재즈의 요소를 보여주고 있다.

 

히틀러가 19331월에 정권을 잡게되자 유태인 박해 및 독재로 인하여 유럽의 많은 중요한 음악가들이 미국으로 망명하게 되었다. 이때 미국에서는 대중 음악가 출신인 거쉬인(George Gershwin,1893-1937)이 클래식을 습득하여 랩소디 인블루 (Rhapsody in Blue,1924), 피아노 콘체르토 F 장조(1925), 오페라 포기와 베스(Porgy & Bess,1935)등으로 크게 성공하고 있을 때였다.

 

그의 작품은 재즈다운 싱싱한 선율과 적당한 스윙감 그리고 세련된 화성등으로 재즈를 예술적 수준으로 높였다. 그의 통속적인듯 하면서도 예술적인 음악은 그가 미국 최고의 민족 음악가란 칭호를 받게 했으며, 미국인들에게는 미국의 민속음악이 재즈라고 확신하게 되는 기틀이 마련되었다.

 

미국으로 정치적 망명을 한 작곡가들은 재즈에 더욱 매료되어 그들 중에는 순수재즈작품을 작곡하여 재즈악단에 주기까지 하였는데 바르톡(Bela Bartok,1881-1945)은 바이올린과 클라리넷을 위한 랩소디를 시게티와 베니굿맨에게, 그리고 스트라빈스키는 에보니 콘체르토(Ebony Concerto,1945)를 우디 허먼 악단(Woody Herman)에게 선사하였다.

 

그리고 그밖에 12음기법의 창조자인 쇤베르그(A.Schonberg,1874-1951)는 그의 에세이에서 재즈의 예술성과 형태, 그리고 느낌에 대하여 극찬한 바 있으며(1924), 미요(Darius Milhaud,1872-1955)도 그의 작품에 재즈의 형식을 도입한 좋은 작품들이 있으니, 이와같은 예는 일일이 하나 하나 헤아릴 수가 없을 정도이다.

 

위에서 서술한 바와 같이 재즈의 발달에 클레식 음악이 상당한 역할을 했던 바와 마찬가지로, 재즈 또한 20세기 클레식 음악 작곡가들에게 수많은 형태의 조리되지 않은 영감을 불어넣어 주었다. 그러나 재즈에 있어서 클레식 음악의 역할은 단지 재즈의 독창성을 발휘시키기 위한 자극을 주는 정도의 역할 밖에 하지 않았으나, 클레식에 있어서는 재즈의 본질적인 즉흥성 등이 빠져있는 상태로 재즈의 리듬이나 약간의 착상을 빌려와 작품에 이용하는 소극적인 형태였다고 할 수 있다.

 

글 출처 : 클래식 코리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