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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의 각색에 있어서 원작에 충실한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번안이나 윤색 등 자유로운 창의나 분식을 덧붙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대부분 원작의 평을 넘지 못하는 것이 예사인데, 잘해야 본전이고 괜히 쓸데없는 짓을 했다고 핀잔을 받기 일쑤이죠. 음악에서도 마찬가지로 편곡이라는 수단을 이용하여 작곡가가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영역을 드러냅니다. 편곡 역시 범작(凡作)으로 그치는 경우가 태반이지만 간혹 전작을 뛰어 넘어 새로운 전범을 구축하기도 합니다.

 

바로크 건반 음악의 핵심 레파토리로 손꼽히는 바흐 샤콘느를 피아노로 편곡한 부조니가 바로 이러한 예에 해당합니다.

사실 부조니의 바흐 샤콘느는 편곡이라기보다는 재창조라는 표현이 어울릴 정도로 각종 화려하고 독창적인기법들을 구사한 작품으로 원곡이 바이올린 곡임에도 마치 오르간곡을 편곡한 작품처럼 느껴지는데 그만큼 오르간적 울림에 깊이 탐닉해 있던 부조니의 음악 셰계를 짐작해 볼 수 잇는 대목입니다.

 

부조니는 오르간의 광대한 울림이야말로 바흐의 음악적 깊이를 표현하기에 가장 적합한 수단이라고 생각했으며 이러한 시도의 궁극이라고 할 수 있는 바흐 샤콘느의 편곡을 듣게 되면 원작에 비해 턱없이 거대해져버린 스케일에 절로 놀라게 됩니다. 바흐 부조니 샤콘느는 88개의 피아노 건반의 최저음에서부터 최고음까지를 모두 구사하고 있으며 마치 오케스트라를 피아노로 축소한 듯한 착각에 빠질 정도로 화려한 음의 향연을 펼칩니다.

 

극도로 난해한 난이도로 가득한 패시지, 도저히 한 손으로 다 짚기 어려운 화음들이 산재한 바흐 부조니 샤콘느는 왼손 엄지 손가락으로 기본  C음을, 새끼 손가락으로는 한 옥타브 아래의 A음, 심지어 G음까지 짚어야 할 때도 있습니다. 이러한 음의 연속을 보고 있노라면 당대를 풍미했던 부조니의 피아노 기교를 능히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지요.

 

부조니는 바흐 샤콘느를 비롯한 그의 여러 작품을 피아노 곡으로 편곡했는데 그의 목표는 바흐의 오르간 작품이 담고 있는 장대한 음햑과 다채로운 음색을 어떻게 피아노로 재현하고자 하는 것이었습니다. 다양한 시도 끝에 원곡에 없는 화성의 강화나 더블 옥타브 진행도 서슴치 않았으며 결과적으로 샤콘느가 가지고 있던 음악적 상상력을 더욱 확대 재생산하는 효과를 가져왔지요,

 

바흐의 오르간 작품을 피아노로 표현하는 부조니의 테크닉을 정말 독창적입니다.

대규모적인 바흐의 오르간 작품에서 부조니는 오르간의 성격과 음약을 피아노로 잡아내는 데 신경을 썼습니다. 오르간은 배음의 풍부한 스펙트럼과 다양한 스톱의 조합으로 인해 악보에 기록되어 있는 것보다 훨씬 넓은 음역을 가지고 있는데, 부조니는 이러한 소리의 깊이를 재창조하려 애썼고 더블 옥타브 진행, 넓은 공간에서 공명의 사용, 화성의 강화 등을 통해 많은 부분을 성취했습니다. 이러한 점은 오르간의 효과를 모방하려고 할 때조차 피아노의 본질과 개성을 담아낼 수 있었던 부조니의 가장 큰 성과 중 하나입니다.

 

대가들을 모방하려는 무의식은 19세기나 20세기에 모든 예술가들의 머리 속에 한순간도 떠나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작업의 궁극적 목표는 어느 예술적 장르건 마찬가지로서 고전적 규율을 더욱 잘 이해하기 우해 모방하는 것이었으며, 그 결과 이러한 테두리에서 자유로워지고 싶었던 발로에 의한 몸부림에 다름 아니었습니다.

 

존경해 온 선대 거장의 음악과 스타일을 청저히 모방하며 자신의 색깔을 발견하고 새로움을 더하는 경우가 많은데 부조니 역시 롤모델에서 자신의 모습을 찾은 셈이죠. 반주도 없는 단선율이 많았던 바흐 샤콘느를 부조니는 자신의 시대에 부합하게 재탄생시켰고 여기서 단순한 모방이 아닌 재해석의 단계로 옮아갔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점은 모방을 바탕으로 아무리 재창조해도 결국 아류에 속하다는 사실입니다. 부조니 말고도 많은 작곡가들이 당시 유행하던 바로크 작품의 편곡에 열을 올렸지만 대부분 잊혀지거나 일반적인 편곡물 중 하나로 비중을 두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예술가의 자기 발전의 원천 중 하나가 모방이라 할 수 있는데 거장의 작품을 들으며 음악적 목표를 세우고 그의 스타일을 따라 하면서 컨셉트를 잡는 것이지요.

 

문제는 베끼기가 효과적인 모방인가하는 점입니다. 모방과 창조 사이의 아슬아슬한 경계에서 대부분 원작을 뛰어넘지 못하는 딜레마에 빠지게 되는데 비해 부조니는 끊임없는 모방 끝에 고유의 색깔을 가지고 속편이라 불릴만큼 가깝게 재창조합니다. 자신이 가진 피아노 테크닉까지 동원해 살을 붙이면서도 바흐를 의식하며 절제의 미학을 보여 주는 바흐 부조니 샤콘느는 원곡의 훌륭함을 해치지 않으면서 자신만의 의도를 살려 또 하나의 새로운 작품을 만든 전범이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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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ch Busoni Chaconne
From Partita No.2 in d minor BWV 1004


Dong Huek Lim(Piano)

 

 임동혁은 장중한 화성의 아름다움을 극대화한 바흐 부조니 샤콘느를 격정적이면서도 우수에 찬 젊음의 낭만으로 커버합니다.

바흐가 무반주 바이올린 곡으로 작곡한 것을 부조니가 스케일이 큰 낭만적인 피아노 곡으로 편곡한 샤콘느는 음폭이 매우 깊고 감정의 변화가 무쌍하여 연주하기 까다로움에도 임동혁은 곡 속 음의 흐름을 섬세하게 갈라서 물 흐르듯 유려한 프레이징과 동시에 내재되어 있는 응축된 에너지를 단번에 발현시켜 마치 건반에서 지진이라도 일으키는 듯 엄청난 스케일을 오고가는 핑거링을 구사합니다.

 

음의 색채와 셈여림의 조절을 치밀하면서도 뚜렷하게 유지하며 연주하다가 갈수록 폭발하는 거친 피아노의 템포는 대답하고 거침없이 질주하며 웅장하게 끌어 올려지고 종국에는 조종(弔鐘)이 울리듯 정연한 피날레로 갈무리하는 임동혁의 바흐 부조니 샤콘느는 아름다움과 슬픔, 환희와 고통을 하나의 세계를 담아낸 그릇과도 같다고 하겠습니다.

 

부조니는 원곡인 바흐 샤콘느에 자신의 기발하고 현대적인 감각을 둥원하여 감동적인 이 곡을 더욱 엄청나게 만들었습니다.

임동혁 역시 일반적인 바흐 해석이 아닌 독창적인 자신만의 낭만적 미학을 십분 발휘하며 나름의 바흐를 호소력있게 표현합니다.

 

물론 재해석은 창조의 어머니임에는 분명하지만 이 단순한 명제가 정답만은 아닙니다. 재해석이라는 어머니가 창조라는 자식을 낳기 위해서는 특별한 노력이 수반되어야 하지요, 연주하고자 음악 위에 자신의 색깔을 입혀야 원곡을 넘어서는 창조가 탄생하는데, 이는 베끼는 답안지가 아닌 발전을 위한 참고서일 뿐입니다.

 

임동혁의 부조니 샤콘느를 들으며 광대한 숲과도 같은 바흐라는 영역 하에 아류의 굴레에서 자유롭지 못할 바에야 과감히 자신의 몸에 맞는 의미있는 재해석을 통해 잔정한 창조의 어머니가 되는 기를 선택한 그의 용기에 박수를 보냅니다.

 

참고 문헌 : 바흐의 실내악(한스 포그트, 윤진영, 음악춘추사) 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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