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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혜안나

감로성님, 재밌는 이야기 하나 해 드릴까요?

부활성야 미사가 자정에 있었답니다.
한국의 현실과는 달리
이곳에서는 아이들의 성장 과정이
자유로움 그 자체이기 때문에
미사 때 신부님을 돕는 일에도
초등학교 정도를 마치고 나면
모두들 싫어라 그만 두어 버리지요.

제 막내는 벌써 Gread 9 이지만
8년 째, 매주 신부님을 도와
복사를 하고 있지요.

그날은 1년 중, 성탄과 부활이라는
큰 대 축일 미사인 터라 미사 진행 예식이
2시간을 넘기는 날이기도 합니다.
녀석이 복사 대장을 맡고 있어
신부님께서 드리시는 미사의 모든
예식 준비를 순서대로 도와 드리고 있지요.

분향 예식도 준비해야 하고
촛불 예식 때 신부님의 낭독을 위해
손전등도 비춰 드려야 하고
하는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랍니다.

그러던 중, 신부님께서 복음 말씀 낭독 중에
제대 위에 앉아 있던 녀석이
슬그머니 뒤로 나가는 것이었습니다.
신자석에서 미사를 드리고 있던 저는
녀석에게 급한 일이 생겼음을 짐작했지요.
녀석이 장이 좀 안 좋거든요.

복음 말씀이 끝나면
성찬 예식을 준비해 드려야 하는데
녀석이 들어오지를 않아 불안 불안할 무렵
강론 말씀이 끝나 갈 때
슬그머니 제대 뒤로 들어와 앉더라구요.
다행히 모두 순조롭게 미사를 준비해 드리고
퇴장을 해 복사 가운을 벗고 나온 녀석이
저를 보고 빙긋이 웃으며 다가옵니다.

"엄마는 내가 왜 나갔었는지 알고 있지?"

"응~.. 배 아팠었니?"

"아휴.. 복사 생활 8년에 제대 위에서
이렇게 뒤가 급해 보기는 생전 처음이네..
지하 화장실로 내려가서 볼일을 보는 동안
얼른 올라와 신부님께 준비를 해드려야 한다는 생각에
얼마나 마음이 급했는지 알겠지? 엄마.."

"그래도 천만다행이었지 뭐니.. 시간을 맞춰서 왔으니"

나이도 그리 많지 않은 녀석의 신심에
얼마나 고맙고 흐믓한 마음이던지
어느 때 보다도 녀석의 봉헌이
너무나 아름답게 느껴졌답니다.

그런데, 마지막 녀석의 말이 정말 압권이었답니다.

"엄마, 엄마만 내가 화장실 다녀왔다고 생각한 거겠지?
사람들도 내가 화장실엘 다녀왔다고 생각할까?
그냥, 제의실에 뭘 준비하러 들어갔다 왔다고 생각하겠지?"

녀석은 아무래도 미사 도중에
화장실엘 가 볼일을 보고 왔다는 것이
신자들이 알게 될까봐 몹시도 창피한가봅니다. ㅋ

녀석의 순수한 마음의 봉헌으로
더없이 큰 부활의 기쁨을 느낄 수가 있었답니다.

참, 행복하고 감사한 날..^^;;

*글이 참 길어졌지요? 음악 들으시면서 더불어 감상하시라구요..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