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겨울 이야기 / 이장희

2011.05.17 17:07

오작교 조회 수:7371

Winterstory.jpg

겨울 이야기 / 이장희

제 연인의 이름은 경아였습니다.
나는 언제든 경아가 아이스크림 먹는 것을 보고 싶어 했습니다.
제가 경아의 화난 표정을 본 적이 있을까요.
경아는 언제든 저를 보면 유충처럼 하얗게 웃었습니다.
언젠가 저는 경아의 웃음을 보며
얼핏 그 애가 치약거품을 물고있는 듯한 착각을 받았습니다.


부드럽고 상냥한 아이스크림을 핥는
풍요한 그 애의 눈빛을 보고 싶다는 나의 자그마한 소망은
이상하게도 추위를 잘 타는 그 애를 볼 때마다
내 가슴을 아프게 했습니다.

 

우리가 만난것은 이른 겨울이었고
우리가 헤어진것은 늦은 겨울이었으니
우리는 발가벗은 두 나목처럼
온통 겨울에 열린 쓸쓸한 파시장을 종일토록 헤매인
두 마리의 길잃은 오리새끼라 불러도 좋을 것입니다.

 
거리는 얼어붙어 쌩쌩이며
찬 회색의 겨울바람을 겨우내내 불어재꼈으나
나는 여늬때의 겨울처럼 발이 시려워서
잠 못 이루는 밤을 지내본 적은 없었습니다.
그것은 경아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우리는 모두 봄이건 여름이건 가을이건 겨울이건
언제든 추워하던 가난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우리에게 따스한 봄이라는 것은 기차를 타고가서
저 이름모를 역에 내렸을 때나 맞을 수 있는 요원한 것이었습니다.


마치 우리는 빙하가 깔린 시베리아의 역사에서 만난
길잃은 한 쌍의 피난민 같은 사람들이었습니다
우리가 서로서로에게 줄 수 있는 것은 열아홉살의 뜨거운 체온뿐
그 외엔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우린 그 외엔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또 우리가 그 겨울을 춥지않게 지낼 수 있었다는 것은
나의 체온엔 경아의 체온이, 경아의 체온엔 나의 체온이 합쳐져서
그 주위만큼의 추위를 녹였기 때문입니다.

 
경아는 내게 너무 황홀한 여인이었습니다.
경아는 그 긴 겨울의 골목 입구에서부터 끝까지
외투도 없이 내 곁을 동행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봄이 오자 우리는 마치 약속이나 한 듯 헤어졌습니다.

그것 뿐입니다.

 

 

번호 제목 날짜 조회 수
348 바보처럼 / 정선연 file 2024.07.06 5737
347 혼자서 울고 있어요 / 도현아 file 2024.07.06 5565
346 하루만 / 적우 2022.07.06 7713
345 음악이 되다 / 바닐라 어쿠스틱 [2] 2020.03.20 8661
344 두근두근 이 겨울 / 바닐라 어쿠스틱 2020.03.20 8055
343 미운 겨울 / 바닐라 어쿠스틱 file 2020.03.19 7921
342 상실 / 최경식 [5] file 2019.12.21 8609
341 별아래 산다 / 김소유 file 2019.10.07 8389
340 내안의 당신이여 / 선우혁 file 2018.07.11 9597
339 데킬라 / 박강성 [2] file 2018.06.10 10495
338 세월이 가면 / 박인희 [2] 2016.10.24 11548
337 9월에 떠난 사랑 / 유익종 [2] file 2016.10.05 10262
336 너를 사랑해 / 해바라기 file 2016.09.29 9740
335 흔적(가화만사성 OST) / 시온(Zion) file 2016.08.23 8588
334 정든이가 그립다 / 임희종 file 2016.05.27 8585
333 그대 고운 내 사랑 / 이정열 [2] file 2016.05.24 10431
332 With Me / 휘성 [1] file 2016.05.02 9425
331 그때 또 다시 / 임창정, 주설옥 [1] file 2016.04.26 9426
330 진고개 신사(Live) / 최희준 [2] file 2016.02.24 8997
329 바람 부는 날 / 이연실 [4] file 2016.02.15 101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