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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erve Jazz Masters - 08 / Stan Getz

2014.11.15 21:36

오작교 조회 수:2772


'보사노바의 교과서' 스턴 게츠(Stan Getz, 1927 - 1998)
아름다운 새 멜로디를 즉석에서 즉흥연주하는 게츠의 능력은 그의 동료들로부터 존경심을 불러켰을 뿐만 아니라 재즈 역사상 가장 인기있는 뮤지션이 되게 하는 것이었다.

기타리스트 찰리 버드와 함께한, 안토니오 카를로스 조빔이 작곡한 히트곡 'Desafinado'가 수록된, 1962년 앨범 "Jazz Samba", 그리고 그 후속탄이라고 할 수 있는, 아스트루드 질베르토가 노래를 불러 히트한 'The Girl From Ipanema'가 수록된 "Getz/Gilberto" 앨범은 브라질의 보사노바를 영원히 재즈의 한 부분으로 만들어 놓는 것이었다.

1927년 2월 2일 필라델피아에서 태어난 게츠는 16살 때 트럼본 연주자 Jack Teagarden의 밴드에 참여한다. 스탄 캔튼, 베니 굿맨 등 빅 밴드 리더들과의 훌륭한 연주는 그를 우디 허먼 악단으로 이끌어 이 밴드에서 색소폰 파트의 Zoot Sims, Serge Chaloff 그리고 Herbie Steward와 함께 "Four Brothers"로 불리게 된다.

1948년 허먼 밴드에서의 "Early Autum" 녹음에서 보여준 놀랄만한 솔로 연주는 그를 뛰어난 솔로연주자로 인식시키는 것이었다. 레스터 영의 사도였던 게츠는 (누구라도) 즉시 (그의 연주라고) 파악할 수 있는, 동경하는 듯하고 가벼우며 비브라토가 없는(yearning, ethereal, vibratoless), 음색을 지니고 있었다. 그리고 광범위한 호소력을 주는 스윙과 비밥의 역량을 지니고 있었다.

게츠는 결코 아름다운 멜로디 라인에 코드 체인지를 개입시키지 않았으며 이것은 좀 더 맹목적으로 코드의 변화를 중요시하던 하드 밥 연주자들과 그를 뚜렷이 구별시켜 주는 것이었다.

게츠는 그의 인생 대부분을 통해 알콜, 마약과 싸워야 했다. 그리고 1958년부터 61년까지 (마약 때문에) 덴마크에서 반쯤은 은퇴한 상태로 살았다. 수년간 이 색소폰 연주자는, 후에 큰 족적을 남기는 칙 코리아, 조안 브래킨, 스티브 스왈로 그리고 게리 버튼과 같은 뛰어난 뮤지션들을 고용해 녹음을 했다.

칙 코리아와의 1972년 앨범 Captain Marvel, 1977년 피아니스트 Jimmy Rowles와 함께한 'The Peacocks' 앨범은 오늘날 열성적인 팬들 사이에서 여전히 인기있는 앨범으로 남아있다. 그의 보사노바 앨범은 전세계에 걸쳐 지속적으로 새로운 팬들을 끌어들인다.

1980년대에 게츠는 캘리포니아 주 팔로 알토의 스탠포드 대학 재즈 프로그램을 가르쳤으며 1991년 6월 6일 캘리포니아 말리부에서 사망하였다. 1986년 게츠는 독자들의 투표에 의해 다운비트 명예의 전당에 올랐다.


Stan Getz (Sax Tenor),Milton Banana (Bateria),Jobim (Piano),Creed Taylor (Producao), Joao Gilberto e Astrud Gilberto(vocais)



그의 가족은 러시아 키에브 출신이며, 스탄의 할아버지는 짜르의 군대에 복무했다. 그러나 유대인 박해를 피해 그들은 러시아를 떠났으며 유럽으로 갔다. 결국 그들은 런던에 다달아 일년 동안 Whitechapel에 살았고, 미국으로 건너갈 여비를 마련하기 위해 양복 수선공 일을 했다. 다행히 그들은 타이타닉 호를 타지 않아서 결국 대서양을 건너 루이지애나에 다다를 수 있었다.

미국에 도착하자마자 그의 가족의 성은 Gayetzki에서 Getz로 바뀌었다. 그리고 스탄은 필라델피아에서 태어났지만 그의 가족은 뉴욕에 정착하였다. 그는 회상하기를 그의 가족이 살았던 지역은 "폭력과 가난을 빼고는 아무것도 없던" 곳이었으며 "그 거리를 벗어나기 위해서 음악을 연주했다."고 전한다.

그의 음악적 능력은 일찍부터 두드러졌는데 여러 다양한 악기를 배워서 처음에는 베이스로 시작하여 바순, 그리고 나서 그의 아버지가 사다준 중고 알토 색소폰을 연주하였다. 15의 나이에 그는 학교를 나와 가수 Dick 'Stinky' Rogers 밴드에 들어갔으나 결석학생 조사관에 발각되고 만다.

일년후 학교를 떠날 나이가 되었을 때 트럼본 연주자 Jack Teagarden은 스탄이 그의 밴드와 투어 연주를 할 수 있도록 보증서류를 제출하여 16의 나이에 그는 미국에서 가장 뛰어난 밴드 중에 하나와 연주하는 프로 음악인이 되었다. 그 후 그는 1947년 Woody Herman Orchestra에 참가하기 전까지 Stan Kenton, Jimmy Dorsey, 그리고 Benny Goodman 등이 이끄는 밴드와 연주를 했다. 2년 후 그는 솔로 연주를 할 수 있게 되었고, 그룹 리더로서 재즈 역사상 가장 빛나는 뮤지션 중에 한명이 되기에 이른다.

그가 행한 최초의 레코딩은 1943년 8월 18일 녹음 된 Jack Teagarden Orchestra와의 연주였으며 그의 마지막 녹음은 1991년 3월 6일날 행해졌다. 이 47년 반이라는 시간동안 위대한 음악적 유산을 후세에 남겼다.

음악가들과 비평가들은 모두 그의 테크닉이 경이적이었으며 어떠한 기술적 요구도 비웃듯 손쉽게 들어줄 수 있을 정도로 발전되고 연마되었다고 말하는 것이 족할 정도였다는 데 동의한다.

그의 음색은 독특한 것이었다. 그것은 전통적인 테너 색소폰의 음색보다 조금 더 가볍고 섬세했으며 알토 색소폰의 음색과 닮아 있었지만 때로 소프라노 색소폰과 비슷한 소리를 내기도 했으며, 그러나 어느 순간에는 바리톤 색소폰의 목이 깊이 잠긴 소리, 심지어는 굉장한 폭발음(sonic boom-비행기가 음속을 돌파할 때 나는 폭발음)과 같은 소리를 낼 때도 있었다.

때로 그의 음색은 공기처럼 가벼웠으며 다시 목시 쉰듯한 소리가 되기도 했다. 그의 색소폰 음색은 그 자신의 기분에 따라 극적으로 바뀌었지만 언제나 즉시 알아볼 수 있는 (그만의) 음색을 지니고 있었다. 또한 시간이 지나면서 삶의 경험이 확장될수록 그의 음색은 바뀌었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순수한 핵심은 여전히 지속되었다.

그의 스타일을 표현하는 말로 'elusive'(교묘히 잘 빠지는, 붙잡기 어려운, 알 수 없는)라는 단어가 흔히 사용되는데 그것은 그의 스타일이 다른 어떤 테너 색소폰 연주자의 스타일보다 더 광범한 범위를 갖고 있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그의 스타일의 뿌리는 분명히 스윙 시대에 두고 있지만, 여러 스타일의 측면을 포괄하는 여러 방면으로 가지치기를 하는 것이었다.

그의 스타일이 레스터 영으로부터 영향받았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인정된다. 그리고 'Always'라는 곡의 1945년 버전에는, 자신의 개인적 스타일이 분명했던 1949년 같은 곡의 라이브 레코딩에 비해, 그 영향이 분명히 두드러진다.

그러나 1946년 피아노의 행크 존스, 베이스의 컬리 러셀, 드럼의 맥스 로치가 포함된 콰르텟 연주는 덱스터 고든의 사운드와 같은 소리를 낸다. 이 세션은 녹음된 네 곡에서, 이 뛰어난 4인조의 실력을 확인시키며, 19의 나이에 뛰어난 연주를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또한 흥미롭다. 그리고 그는 밥 운동의 아이디어들을 그의 경력의 초기에 완전히 자신의 것으로 흡수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이것은 놀랄만한 테크닉을 지닌 뛰어난 젊은 뮤지션이 여러 유명한 뮤지션의 영향을 충분히 자기 것으로 소화했음을 보여주는 것이었으며, 그들과 동등한 위치에서 겨루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순간이었다.

레스터 영이 그에게 주요한 영향을 주었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었다. 아마도 레스터 영이 중요한 영향을 끼쳤다는 시각은 게츠의 사운드가 콜맨 호킨스로부터 보다는 레스터 영에게서 더 큰 영향을 받았다는 사실때문이겠는데, 그러나 후기에 더 분명히 두드러지는 벤 웹스터의 따뜻한 氣息音의 사운드를 추구했다는 것 이상이 있다. 실재로 게츠의 연주에서는 다른 많은 테너 색소폰 연주자의 영향을 찾아볼 수 있다.

그러나 이들 중 아무도 그의 연주의 긍극적인 모델을 제공하지는 않았다. 그것은 다른 곳에 있다. 그가 1947년 Woody Herman Orchestra에 참여했을 때 그는 자신이 뛰어난 젊은 뮤지션들 에 둘러싸여 있다는 것을 깨달았는데, 그들 중에서 특히, 재즈 신을 빛나게 한 가장 뛰어나고 개인주의적인 연주자들은 트럼본의 빌 해리스와 바리톤 색소폰의 Serge Chaloff였다.


왼쪽부터 Joao Gilberto, Antonio Carlos Jobim, Stan Getz.

해리스는 게츠보다 10살이 연상이었다. 그의 연주는 (게츠의 말에 따르면) "열정적이고 기이했으며 변덕스럽고 유쾌하고, 굉장히 서정적이었으며, 환상적이고 그리고 비밥적인 전개"를 보여주는 것이었고, 그는 "최고의 테크닉과 음역 그리고 인내를 축복처럼 부여받"았고 "음악적 취지의 통제는 그의 테크닉만큼이나 무서운 것이었다." 그는 압도적인 음악적 인성을 가지고 있었고, 밴드에 참여하고 있는 모든 젊은 음악인들에게 영향을 주었으리라는 것은 상상하기 어렵지 않다.

허먼 허드와 함께한 그의 연주를 들어보고 다시 게츠의 연주를 들어보라. 그 영향력은 분명해진다. 트럼본은 색소폰과 매우 다른 악기적 성격을 갖고 있지만 해리스가 자신의 메시지를 전달하는데 사용한 음악적 장치와 테크닉은 젊은 섹소폰 연주자에게 벌써 흡수되어 있었다. 비브라토의 난폭한 사용, 극닥적이고 다이나믹한 대조, 빠르게 오르내르는 음정 그리고 조성의 왜곡은 모두 게츠의 감성적인 색소폰에 그대로 발견된다.

글 출처 : 다음카페 '재즈 소리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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