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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thern Rock

2015.10.08 16:59

오작교 조회 수:1809

Southern Rock

 

 

어휘 그대로 '미국 남부의 록'을 지칭하는 말로서, 1970년대 미국의 남부 출신이거나 그곳을 활동거점으로 한 밴드가 구사한 남부색이 짙은 록을 가리킨다. 대표적인 그룹으로는 단연 올맨 브라더스 밴드(Allman Brothers Band)와 레너드 스키너드(Lynyrd Skynyrd)가 첫 손에 꼽힌다.

 

두 그룹을 소개할 때 지금도 서던 록 밴드라고 수식이 붙는 것을 보면 그것이 하나의 독립된 장르로 확립되었다는 사실을 말해주기도 하지만 그것보다는 남부 출신이라는 '지역성'이 크게 작용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올맨 브라더스 밴드는 미국 남부 조지아 주 잭슨에서 결성되었고, 레너드 스키너드는 플로리다 주 잭슨빌 출신이다.

 

당시 음악계에선 선거 때마다 보수적인 공화당에 몰표를 던진 미국 남부지역이 북부 자유주의성향의 사람과 이슈로부터 소외된 것에 따른 반발과 역습이 서던 록에 투영되었다는 시각이 우세했고, 따지고 보면 올맨 브라더스와 특히 레너드 스키너드의 경우 남부의 보수적 포퓰리즘이 그들 인기에 윤활유 역할을 한 것도 사실이다.

 

자유주의적인 닐 영(Neil Young)이 'Alabama'와 'Southern man'을 통해 남부의 편견과 획일적 행태를 꼬집자 그에 대한 분노의 답가로 레너드 스키너드가 'Sweet home Alabama'를 발표했고, 이 곡이 1974년 공전의 히트(싱글차트 8위)를 기록한 것이 말해준다. 평론가 데이브 마시(Dave Marsh)는 'Sweet home Alabama'를 가리켜 '남부에 대한 애정과 포퓰리즘의 위기가 항상 어깨동무 해왔음을 말해주는 최종의 사례'라고 했다.

 

물론 레너드 스키너드로부터 서던 록이란 용어가 잉태된 것은 아니다. 지금도 걸작리스트에 단골로 오르는 올맨 브라더스의 라이브 앨범 < Live At The Fillmore East >가 나온 1971년에 이미 서던 록이란 어휘가 출현했고 레너드 스키너드의 전국적 히트보다 앞선 1973년 'Ramblin' man'이 인기차트를 강타하며 그들에게 최고 히트를 선사할 때는 인구에 널리 회자되었다.

 

이 그룹의 명 기타리스트인 듀언 올맨(Duanne Allman - 에릭 클랩튼의 명곡 'Layla'에서 그 환상적인 슬라이드 기타 연주를 들려준 바로 그 사람)이 이전의 그룹 활동에서 하울링 울프의 'Spoonful'을 레코딩하고 알라바마의 그 유명한 스튜디오인 머슬 숄즈(Muscle Shoals)에서 전문 세션을 담당한 사실이 웅변하듯 이들은 남부(Deep South)의 토속적 블루스를 록으로 연주했다.

 

남부라 하면 블루스의 고장이고 또한 미국 대중음악의 뿌리가 혼재된 지역으로 블루스가 컨트리와도 같은 민요(Folk)로서 접점을 이루고 있음을 전제한다면 이들의 음악에는 블루스와 동시에 컨트리의 요소도 내재되어 있음이 나타난다. 전형적인 '뿌리 록' 이름 하여 루츠 록(Roots Rock)인 셈이다. 하지만 블루스를 기반으로 컨트리가 저류한다는 것이지, 결코 컨트리가 중심이라는 말은 아니다. 이 점에서 서던 록은 음악적으로 더러 혼동된 컨트리 록(Country Rock)과 명백한 분리선을 친다.

 

서던 록은 다시 말해 2가지 조건, 즉 남부 출신 그리고 남부의 향토색이 짙은 블루스를 연주하는 록 밴드라는 조건이 충족되어야 한다. 남부라는 지역적, 같은 남부 블루스 근저의 록을 한다는 데서 나온 유대감은 레너드 스키너드의 트리플 기타의 향연 'Free bird'가 증명한다. 지금도 기타지망생들이 모였다하면 입에 올리는 이 곡은 레너드 스키너드가 듀언 올맨의 죽음에 부쳐 헌정한 트리뷰트 송이다.

 

같은 운명이 가져온 비극이었을까. 올맨 브라더스의 축 듀언 올맨은 오토바이 사고로 1971년 유명을 달리 했고(겨우 스물넷의 나이로!) 베이스 베리 오클리도 이듬해 또 오토바이 사고로 숨을 모았다. 듀언의 동생 그렉 올맨은 그렉 올맨 밴드(Gregg Allman Band)로 권토중래를 꾀하며 여러 장의 앨범을 냈지만 형의 부재를 극복하지는 못했다.

 

레너드 스키너드는 리드 싱어이자 그룹의 음악 간판인 로니 밴 잰트(Ronnie Van Zant)와 기타리스트 스티브 게인스 등 다수가 1977년 미시시피에서 비행기 추돌사고로 몰살을 당했다. 남은 멤버인 개리 로싱톤은 1979년 역시 기타리스트인 알렌 콜린스와 함께 로싱톤 콜린스 밴드(Rossington Collins Band)를 결성, 이듬해 'Don't misunderstand me' 싱글로 잠깐의 부활을 알린 채 사라져갔다.

 

잿더미 속에서 되살아난 이들 그룹보다 서던 록의 호소력을 더 널리 알린 그룹은 1974년 탐파에서 결성되어 1981년 오래된 본 먼로의 곡 '(Ghost) Riders in the sky'를 리메이크해 향수를 자극한 그룹 아웃로스(Outlaws)와 1977년 'Heard it in a love song'을 히트시킨 마샬 터커 밴드(Marshall Tucker Band)와 1979년 'The devil went down to Georgia'로 대박을 터뜨린 찰리 다니엘스 밴드(Charlie Daniels Band)를 꼽을 수 있다.

 

하지만 찰리 다니엘스 밴드의 경우는 남부 블루스의 색깔이 옅어 컨트리 록으로 분류되기도 한다. 어틀랜타 리듬 섹션(Atlanta Rhythm Section)이나 퓨어 프레이리 리그(Pure Prairie League) 등도 사정은 같다. 1970년대를 장식한 서던 록은 컨트리 록도 그랬듯 1980년대 들어 거의 장르적 파워와 존재감을 상실했다. 1990년대 들어 그런지 이후 록의 분화과정을 거듭함에 따라 그 가지 중의 하나로 카운팅 크로우스(Counting Crows) 등에 의한 루츠 록이 부상했을 때 그 원조이자 원천으로 잠깐 동안 마니아들의 관심을 받았을 뿐이다.

 

서던 록은 근래 한 해마다 장르 하나씩을 탐색해가는 그래미상이 2005년 시상식장의 아이템으로 선택, 올맨 브라더스 밴드와 레너드 스키너드의 전 멤버들이 출연해 실황연주를 들려주며 마침내 역사적 장르로 인정받았다. 그래미상이 불쑥 서던 록을 메뉴화한 것은 어쩌면 부시 정부 들어서 입김이 강해진 미국 남부와 그 음악에 대한 예우였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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