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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세기 작곡가 하이든의 유머는 놀랍습니다. 현대 청중도 깜짝 놀랄 재치를 과시했죠.

바이올린 둘, 비올라 하나, 첼로 하나를 위해 쓴 현악4중주 ‘농담(the joke, Op.33 No.2)’을 볼까요.

 

4분여 동안 연주되는 4악장의 마지막 부분. 곡이 끝나는 것처럼 들리는데 사실 한 마디 전체가 쉼표입니다.

끝났다고 생각한 청중이 박수를 치려는 순간 연주가 천연덕스럽게 계속되죠. 그리고 또 한 번 장난이 이어집니다.

연주자들은 한 마디를 쉬었다 다시 연주하기를 반복합니다.

 

속다 지친 청중이 박수 치기를 포기할 때쯤 이 곡은 ‘안 끝나는 것처럼’ 끝납니다.

음악이 이어질 것 같은데 연주자들이 일어나죠. 눈치를 보다 허겁지겁 박수 치는 청중을 보며 작곡가는 웃고 있었을까요?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이문세가 이승철에게 물었습니다.

“‘인연’이라는 곡은 1절만 작곡했다가 2절을 뒤늦게 붙였나 봐요?” 곡이 다 끝난 것 같다가 2절이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이승철이 답합니다.

“아니에요. 원래 그런 아이디어로 작곡된 거예요. 요즘엔 그게 대세래요.”

 

이 21세기 음악의 작곡자는 혹시 하이든을 알고 있었던 걸까요,

아니면 청중과의 ‘박수 게임’이 시대를 관통하는 작곡가의 놀이인 걸까요?


클래식 공연장에서는 ‘박수 타이밍=청중 수준’이라는 공식이 성립된 지 오랩니다.

하이든의 ‘농담’처럼 끝난 듯하다 다시 시작하는 음악은 박수를 언제 칠지 모르는 사람들에게 고문에 가깝습니다. 요즘엔 악장 사이에 박수를 치면 사람들의 눈총을 받고 심지어 무식하단 소리까지 듣습니다. 그래서 뉴욕 타임스의 음악평론가인 버나드 홀랜드는 “현대 청중은 공연장에서 감상자가 아니라 ‘박수 감시자’가 된다”고 비꼬기도 했죠.


초기 음악회는 소수의 제한된 청중 앞에서 사교 모임의 ‘배경 음악’처럼 진행됐습니다.

모차르트는 “귀부인들의 대화를 방해하는 시끄러운 곡을 작곡했다”는 ‘혹평’을 들었을 정도죠. 그렇게 소수의 청중을 대상으로 하는 ‘살롱’에서 벗어나 19세기 이후 대형 공연장으로 나오면서 박수에 대한 약속이 생겼습니다. 악장 사이는 물론 마지막 음이 사라지기 전 치는 박수도 금지됩니다. 공공의 감상이 기준이 된 거죠. 더 이상 혼자, 혹은 몇 명이 듣는 음악회가 아니니까요.

 

2008년 12월 무서운 신예 지휘자 구스타보 두다멜(27)의 내한 공연에서 이 원칙이 아주 잘 지켜졌습니다.

마지막 곡이 끝나고 3분 정도 모든 청중이 아무 소리도 내지 않았습니다. 두다멜은 두 팔을 허공에 든 채 정지해 있었죠.

오케스트라의 화음이 콘서트홀 구석구석으로 흩어졌습니다. 지휘자가 팔을 내리자 그제야 박수가 쏟아졌죠. 모두가 그 마지막 화음을 제대로 즐긴 겁니다.

 

이제 클래식 음악회장 박수의 원칙이 쉬워지셨나요?

연주자가 박수를 받고 싶어 할 때 주면 됩니다.

 

- 피아니스트가 의자에서 일어날 때,

- 지휘자가 지휘봉을 내리고 숨을 돌릴 때,

- 바이올리니스트가 악기를 내릴 때,

- 성악가가 긴장을 풀고 숨을 내쉴 때까지 기다리면 됩니다.

 

그러면 음악에 집중할 수 있고, 남도 방해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어떠신가요, 이젠 하이든과의 ‘박수 게임’도 이길 수 있겠죠?

 

출처 : 네이버 블로그 달사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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