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감상을 위한 예비지식 - 교향시(交響詩, Symphonic Poem)
2015.03.06 13:32
교향시(Symphonic Poem)
모든 문화가 다 그렇듯이 음악 문화 또한 예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시대의 흐름을 따라 부단히 변모하여 지금에 이른 것이다. 그것은 정치적으로나 경제적인 뒷받침 혹은 자연 환경과 민족의 특성에 따라 양상을 달리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사상적인 조류와 그 배경으로 인해 낡은 것이 사라지기도 하고 새 것이 싹터 그 전성을 보는 예를 우리는 많이 볼 수 있는 것이다.
새로운 것이란 흔히 낡은 것에 대한 반항으로 나타난다. 하지만 19세기 중엽에 두각을 보인 교향시는 그 때까지의 형식미의 표현에서부터 탈피한 새 양식의 음악이다.
낭만주의 음악인 자유주의 음악은 19세기 초에는 옛 형식미의 스타일을 답습하면서도 그 내용만은 풍부한 감정과 정서를 담은 음악들이었다. 그렇지만 자유주의 사상이 고조됨에 따라 작곡가들도 규칙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운 음악을 쓰게 되었다.
우리들이 고전 음악에서 볼 수 있는 교향곡이란 소나타 형식, 가요 형식, 론도 형식 등 엄격한 형식에 보통 4악장으로 된 기악곡들이었다.
교향곡의 아버지라는 하이든을 위시하여 모차르트, 베토벤 등의 교향곡은 그 같은 형식미의 균형이 잡힌 음악이다. 말하자면 고전파 음악 시대는 기악으로서 문학적인 내용을 표현하려는 표제음악(Program music, 標題音樂)의 완성은 보지 못한 때였다.
우리들이 잘 아는 베토벤의 교향곡 제6번 《전원》을 표제음악으로 간주할 수 있을지 모르나, 그것은 단지 음악적으로 자연을 묘사한 것은 아니다. 베토벤 자신의 말대로 전원 교향곡은 음화(音畵)라기보다는 오히려 감정의 표현인 것이다. 자연을 사람보다 더 사랑했던 베토벤은 그의 마음에 비치는 자연에 대한 감정을 찬미하고 표현했으며 그 추억을 음악으로서 피력했을 따름이었다. 물론 이 작품이 베를리오즈와 같은 후배들에게 새 길을 열어 준 것은 사실이다.
교향시는 관현악에 의한 표제음악의 한 종류이다. 교향시의 창시자는 독일의 신낭만주의 음악의 선구자인 리스트였다. 작곡가이자 불세출의 피아니스트인 그가 파리에서 활약할 무렵, 그의 친구인 베를리오즈가 《환상 교향곡》에서 서사적인 상념을 표현하면서도 전통적인 양식을 답습한 것과는 달리, 리스트는 형식을 전혀 무시했으며 모든 것을 단적으로 표현하였다.
베를리오즈의 환상 교향곡 《이탈리아의 헤럴드》, 《로미오와 줄리엣》에서 볼 수 있는 바와 같이 그는 고정악상(Idee fixe, 固定樂想)과 같은 방법을 사용했다.
그것은 전 작품을 통해서 간혹 되풀이 되는 짧은 선율로서 일정한 의미와 내용을 가진 동기였었다. 베를리오즈는 환상 교향곡에 나오는 연인의 테마를 그 같은 짧은 선율로 표현하였으며 바그너는 그것을 좀 더 확대시켜 시도동기(Leitmotiv, 示導動機)를 만들어 사용하였다.
고전 교향곡에서 볼 수 있는 동기(Motiv)가 일정한 법칙에 따라 변화되던 것을 교향시에서는 무엇인가를 분명하게 하기 위해 동기를 자유롭게 발전시켰던 것이다.
아무튼 리스트도 그 같은 요소를 받아들였는데, 그는 종래의 악장제를 폐지하고 단악장(單樂章)제를 채택하였다.
또 그것이 몇 개의 악장으로 되어 있다고 하더라도 곡은 그대로 접속되어 나가는데, 이같이 자유로운 구분은 어디까지나 그의 사상에 바탕을 둔 것이라 하겠다.
그것은 문학적이면 시적인 내용을 가진 자유로운 형식의 악곡이다. 재래의 음악 형식을 무시한 리스트의 수법은 때로 비난을 받은 때도 있었지만 그것은 시적인 내용이 형식을 결정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근대의 교향시가 고전 교향곡과 같이 절대음악과 다른 점도 거기에 있다고 하겠다. 리스트는 표제를 묘사적으로 취급했다기보다는 사물에 대해서 시적으로 다루는 태도였다.
결국 시적인 관념에 따라 추상적으로 창작에 임하는 것이다. 음악은 이 시적인 관념의 흐름에 따라 진행되므로 형식에 구애됨이 없이 하나 혹은 몇 개의 테마를 자유롭게 변형시켜 일종의 변주곡처럼 꾸며 나가는 것이다. 시적인 관념을 가진 표제적인 피아노곡은 일찍이 슈만의 작품에서 찾아볼 수 있다.
그러나 리스트는 그 같은 표현 수단을 한층 더 강화시켜 시적 개념을 높이기 위해 편성이 큰 오케스트라를 사용했으며, 거기에서 풍부한 색채를 나타내도록 하였고, 그 규모가 웅장하고 구성을 방대하게 하기 위해서 이를 교향적으로 만들었다. 말하자면 리스트의 교향시는 이처럼 교향악적인 관현악곡이라는 것이 하나의 특색인 동시에 매력이었다고 하겠다. 리스트는 교향시를 모두 13곡이나 썼는데, 대부분이 문학적인 작품의 제재를 사용하였다.
1875년, 바이마르에서 연주된 그의 최초의 교향시 《산 위에서 듣다, Ce qu’on entend sur la montagne》은 빅토르 위고의 시집 「가을의 잎」 중의 낭만적인 장편시를 표제로 한 것이다. 시인이 높은 산 위에서 들은 것을 노래한 것인데, 자연과 번민하는 인간성을 대비시켰으며 낙천주의와 염세주의를 대비시킨 것이라고 하겠다. 그는 이 같은 내용의 시적인 사상을 음악화한 교향시로서 첫 솜씨를 보인 것이다. 교향시 《탓소, 비탄과 승리 – Tasso, lamento e trionfo》의 원작은 1849년 바이마르에서 괴테 탄생 100주년 기념제에서 괴테의 탓소가 상연되었을 때 서곡으로 작곡된 것이다.
그 후 수정하여 1854년에 이 작품이 완성되었는데, 이탈리아 르네상스 시대의 서사시인 탓소 중의 《구해낸 예루살렘》이란 시에 의거해 쓴 작품이다.
그는 전곡을 크게 비애와 승리로 구분했으며 미뉴에트를 다시 첨가시켰다. 교향시 《전주곡, Les preludes》은 그의 13개의 교향시 중에서도 가장 유명한데, 이것은 19세기 초 프랑스 시인 라마르틴이 쓴 「시적인 명상」이라는 글에 나오는 짧은 문장을 음악으로 표현한 것이다.
그 밖에도 《오르페우스, Orpheus》, 《프로메테우스, Prometheus》, 《마제파, Mazeppa》, 《축제의 울림》, 《영웅의 탄식》, 《헝가리》, 《햄릿》, 《훈족의 싸움》, 《이상, Die Ideale》, 《요람에서 무덤까지》 등 많은 명작을 남겼다.
리스트의 교향시는 19세기 후반에 이르러 유럽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더구나 국민악파의 작곡가들은 이 교향시를 즐겨 받아 들였다. 따라서 자기 나라의 자연과 전설, 그리고 풍경과 생활 등을 소재로 하여 극히 다양하게 구사하였다.
한편 독일에서는 이를 한층 더 발전시켰는데, R. 시트라우스는 이 교향시 분야의 최대의 작곡가였다. 그는 음악을 형식적인 구성으로부터 해방시켜 음을 하나의 수단으로 하여 시와 극과 전설 등을 표현하려는 데 성공했던 것이다.
R. 시트라우스는 시도동기의 기법과 변주법 또는 그의 신기에 가까운 교묘한 관현악법 등으로 재래 음악의 힘으로는 표현할 수 없는 추상적인 것까지도 잘 나타내었다. 그의 많은 오케스트라곡 중에서 표제가 붙어 있지 않은 교향곡은 단 1곡 뿐이다.
교향적 환상곡 《이탈리아로부터》를 비롯하여 교향시 《돈 환, Don Juan》, 《맥베드》, 《죽음과 변용》, 《틸 오일렌시피이겔의 유쾌한 장난》,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돈키호테》, 《영웅의 생애》 등 적지 않은 일품을 그는 남겼다.
한편 러시아 국민악파의 보로딘만 해도 그의 작품 전부는 아니지만 교향시 《중앙아시아의 초원에서》와 같은 동양적인 요소가 강한 교향시를 썼다. 그의 음악은 소박하면서도 한 폭의 풍경화를 연상케 하는 수법으로써 그 정경을 여실히 표현했다고 하겠다.
무소르크스키 또한 러시아 국민악파 5인조의 한 사람인데, 그의 교향시 《민둥산의 하룻밤》은 널리 알려진 명작이다. 그는 이 문학적인 표제로 소박한 면을 잘 미화시켰다.
그 밖에도 러시아의 작곡가 차이코프스키, 림스키=코르사코프, 스크리아빈, 글라주노프 등도 알찬 교향시를 작곡하였다.
리스트의 직계 작곡가로서 체코슬로바키아의 스메타나를 들 수 있다. 그는 본래 독일의 고전주의와 낭만주의 음악에서 출발했지만 리스트의 영향을 받아 교향시의 작곡자로 군림하게 되었다.
그 테마의 소재는 향토적인 속악(俗樂)과 무곡 등을 섭취하여 민족정신을 고양시켰으며 그 나라의 국민적인 음악을 확립시켰고, 조국과 자연과 역사를 찬미한 6곡으로 된 연쇄곡을 작곡하였다. 형식적으로 전통과 인습에 얽매이지 않고 시상이 떠오르는 대로 자유롭게 구성하여 표현한 것이다.
그의 대표작 《나의 조국》은 《비세라드》, 《블타바》, 《사르카》, 《보헤미아의 들과 숲에서》, 《타보르》, 《블라니크》 등으로 되어 있다. 그 밖에도 교향시 《리처드 3세》와 《발렌시타인의 진영》 등은 널리 알려져 있다.
핀란드의 시벨리우스는 교향시 《전설》, 《핀란디아》, 《해신》, 《타피올라》 등의 작품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프랑스의 생상스도 교향시의 작곡가로 알려져 있다. 교향시 《옹팔의 물레》, 《파에통》, 《죽음의 무도》, 《헤르쿨레스》 등의 명작이 있다. 그의 예술은 비교적 고전적인 기법에 기반을 두고 있지만 그 내용에 있어서는 낭만적이며 나아가서는 인상파의 선구자로서 또는 시적인 상념을 잘 표현한 작곡가였다.
드뷔시는 인상파 음악의 창시자이지만 그의 수법에 의한 《바다, La mer》를 비롯한 작품 등은 중요한 교향시라고 하겠다.
현대에 이르러서 교향시는 많은 변모를 거듭하여 그 양상을 달리한다. 예컨대 프랑스 현대 음악을 대표하는 오네케르는 그의 작품 《퍼시픽, Pacific 231》에서 보여 준 바와 같이 재래의 문학적 혹은 회화적인 묘사의 시적인 표현은 찾아볼 수 없다. 그것은 기관차가 달리는 운동인 것이다.
그러므로 20세기의 작곡가들은 문학과 회화의 설명보다는 음악 그 자체의 미적인 추구에 관심을 돌리고 있다고 하겠다. 그런데 카젤라의 《이탈리아》, 말리피에로의 《자연의 현상》, W. 윌리스의 《6개의 교향시》 등의 작품은 본래의 교향시적인 의의를 지니고 있다.
그러나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오늘의 교향시를 보면 문학적인 묘사보다는 음악의 구성면에 더 집중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므로 낭만주의시기에 그 전성을 보이던 교향시는 이미 종말을 고한 감이 없지 않다.
감정에 사로잡히지 않고 불필요한 것을 제거하며 모든 것을 객관적으로 판단하려는 오늘에 이르러서는 그 같은 방법이 타당한 변모로 간주되어야 하겠다.
그러므로 현대의 교향시적인 작품은 보다 다른 차원에서 표제음악의 새로운 문제로 등장하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