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ul
2015.10.08 17:01
Soul
간혹 음식이 제 맛이 나지 않을 때 어떤 사람은 "음식에 소울이 없다!"고 말한다. 소울은 영혼 또는 정신을 가리키는 말이다. 즉 음식에 혼이 들어가지 않았기 때문에 진한 맛이 배어있지 않다는 것이다. 음악도 마찬가지다. '혼이 들어간 음악' 그래서 '진한 음악'이 소울이다. 농도가 짙고 그래서 통렬함을 주는 음악이다. 하지만 다른 음악 장르와 혼동될 때도 있다. 그렇다면 과연 어떤 음악을 소울이라고 하는지, 그리고 어떤 환경에서 발전해왔는지 살펴보기로 한다.
음악의 형태로 볼 때 소울(Soul)은 기본적으로 리듬 앤 블루스(R&B)와 같다. 다시 말하면 흑인음악으로 미국 남부 시골에서 흑인노예들이 노동하며 부르던 블루스가 북부 대도시로 올라와 발전한 음악이다. 지난 호에서 다루었듯 리듬 앤 블루스가 도시화되고 리듬을 획득한 블루스를 라는 점에서 소울도 다를 바가 없다.
미국인들도 "소울은 음악적으로 리듬 앤 블루스와 맥을 같이 하며 따라서 굳이 구분할 필요가 없다"고 말한다. 실제로 1970년대의 유명한 흑인가수인 알 그린(Al Green)을 두고 소울 가수라고도 하지만 리듬 앤 블루스 가수라고도 일컫는다.
그러나 어떤 리듬 앤 블루스 음악을 들으면서 음악관계자들은 그것을 유독 소울이라고 말할 때가 있다. 토대는 같지만 음악의 분위기가 다르기 때문이다. 우선은 흑인의 냄새가 물씬해 아주 분위기가 진하다. 하지만 R&B도 비슷한 분위기의 노래들이 많다.
결정적으로 소울이 리듬 앤 블루스와 다른 것은 가수들이 목청을 돋워 노래한다는 점이다. 한마디도 '질러대는' 창법이다. 그래서 시원하고 통렬하다. 이 점에서 소울은 고음을 지를 때 가리키는 말인 샤우트(Shout)와 불가분의 관계가 있다. 여기서 크게 나누자면 리듬 앤 블루스는 '부드럽게 진한' 음악이라면 소울은 '강하게 진한' 음악이라고 할 수 있다.
국내 음악에서 소울의 충격이 어땠는지를 보자. 과거 1960대까지만 해도 국내 가수들은 아주 점잖게 노래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두 손을 붙잡고 기도하듯 부르는 가수도 많았다. 설령 고음을 구사해도 몸가짐이 흐트러지지 않았다. 그러다가 1960대 말부터 1970년대 초반에 이르기까지 노래하는 제스처가 사뭇 다른 박인수 김추자 그리고 펄 시스터즈와 같은 가수가 등장했다.
이들은 때로는 마구 고음을 질러대는 창법을 구사했으며 당연히 그 '열창' 때문에 몸짓도 컸고 자유스러웠다. 가만히 서서 조용한 트로트를 부르거나 트위스트 춤을 추는 것과는 전혀 달랐다. 사납게 무대를 휘저었으며 더러는 노래부르면서 땀을 흘렸다. 정말이지 소울은 국내 가요사상 처음으로 팬들로 하여금 '가수들의 땀'을 보게 했다. 박인수가 '봄비'를 부를 때를 연상해 보라.
나중 1990년대 들어와 신효범이 다시 부른 펄 시스터즈의 고전 '님아'를 들어보면 제목이자 이 곡의 주 멜로디 부분인 '님아!'하는 대목에서 펄 시스터스나 신효범은 크게 목청을 돋워서 질러댄다. 이러한 식의 노래부르기는 과거에는 접할 수 없는 일종의 파격이었다. 소울은 그렇게 우리 가요의 창법에 일대 혁신을 몰고 왔다.
그런데 국내에 소울을 선사한 가수들은 잘 보면 대부분 '록의 대부'라는 신중현이 곡을 쓰고 만들어주어 스타덤에 오른 인물들이었다. 말하자면 '신중현사단'이었다. 여기서 신중현은 한국에 록을 심었을 뿐 아니라 소울도 소개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
그럼 왜 가수들이 왜 이렇게 무대를 넓게 쓰면서 사납게 노래하게 됐을까. 이 점이 중요하다. 미국에서 소울이란 말이 널리 퍼지게 된 때는 1960년대 말이었다. 물론 이 말은 이전인 1950년대에 비밥 재즈 뮤지션들의 앨범에서 사용되었다. 색소폰의 대가인 존 콜트레인의 1958년 앨범 제목이 소울과 자신의 이름을 합성한 '소울트레인(Soultrane)'이었다.
그러나 소울을 의미있게 만든 것은 1960년대 민권운동 정확히 말하자면 흑인 공민권 운동이었다. 이 무렵 흑인들은 그동안 당연시해오던 멸시와 푸대접의 굴레를 벗고 자신들의 권리회복에 나섰다. '우리가 백인보다 못할 게 뭐냐? 그런데 왜 우리는 그들의 지배를 받아야 하는가?'
그런 의문은 곧바로 백인지배사회에 대한 불만과 분노로 이어졌으며 마침내 1960년대 중반 이후 도시 흑인빈민가에서는 대규모 폭동이 연쇄적으로 발발했다. 당시 미국의 내전을 방불하게 했던 1967년 디트로이트 흑인폭동의 경우 이 소요를 진압하기 위해 정부군만 만6천명이 파견되었을 정도였다.
이렇게 분노한 흑인, 강경해진 흑인들의 음악이 어떻게 변했는지 상상하기란 어렵지 않다. 당연히 몸을 흔들어대며 외쳐대고 질러댔을 것이다. 그것이 바로 소울이었다. 이 때부터 유명한 빌보드 차트는 흑인음악 용어를 리듬 앤 블루스에서 소울로 바꾸었다. 흑인들은 서로를 소울 브라더, 소울 시스터라고 일컬었고 '소울 트레인'이라는 TV 프로가 신설되었다. 단맛의 포테이토 파이와 같은 소울 음식도 등장했다. 흑인에 관한 한 모든 게 소울이었다.
소울은 한마디로 흑인 공민권운동에 의해 배양된 '흑인들의 자긍심'을 반영했으며 그 형식은 샤우트가 대변하듯 '분노의 폭발'을 취했다. 흑인들은 이 무렵 2백년 가까이 이어져온 움츠린 자세를 버리고 어깨를 펴고 거만하게 팔자걸음을 걷기 시작했다.
록 평론가 아놀드 쇼는 소울을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소울은 흑인들의 거만(sass) 분노(anger) 격노(rage)다. 그것은 느낌이 아니라 신념이며 멋이 아니라 힘이다. 그것은 의식의 폭발이며 흑인들 자존(self-pride) 힘(power) 그리고 성장에 대한 잠재력(potential for growth)에 대한 각성으로 점화된 것이다."
'소울의 대부'로 불린 제임스 브라운(James Brown)은 "소울 음악과 민권운동은 손에 손잡고 함께 성장해왔다"고 말한다. 그는 또 하나 별명인 '미스터 다이너마이트'답게 마치 화산이 폭발하는 듯한 노래로 흑인들의 분노와 한을 표현했다. 소울을 논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가수는 제임스 브라운과 더불어 '소울의 여왕'이란 칭호를 가지고있는 아레사 프랭클린(Aretha Franklin)이다. 그녀의 1967년 히트곡 '존경(Respect)'은 디트로이트 폭동 때의 흑인시위대의 찬가로 불려졌고 그래서 디트로이트 시장 제롬 카바나는 아레사 프랭클린의 날을 선포하기도 했다. 아레사는 국내에서도 방영된 1997년 '디바스'라고 하는 유선방송 프로에 나와 머라이어 캐리와 셀린 디온 등 당대 여가수들을 주눅들게 하는 열창으로 다시 한번 시청자들의 뇌리에 깊이 각인되었다.
오티스 레딩(Otis Redding)은 '소울의 왕'으로 일컬어지며 레이 찰스(Ray Charles)는 '소울의 전설'로 꼽힌다. 이밖에 윌슨 피켓, 퍼시 슬레지, 샘 앤 데이브도 유명하며 1970년대에는 알 그린(Al Green)과 커티스 메이필드(Curtis Mayfield)가 독특한 소울로 일세를 풍미했다. 소울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대중음악사의 별들로 숭앙되고있는 이들의 최소한 히트곡 모음집은 챙겨야 한다.
국내에서는 이 가운데 퍼시 슬레지(Percy Sledge)의 '남자가 여자를 사랑할 때(When a man loves a woman)'가 가장 잘 알려진 소울 곡일 것이다. 이 곡은 발표 당시인 1966년에도 차트 정상을 차지했고 나중 1991년 마이클 볼튼이 다시 불렀을 때도 1위를 차지했다.
그런데 마이클 볼튼은 흑인이 아니라 백인이다. 그처럼 백인이 구사하는 소울을 사람들은 화이트 소울 또는 블루 아이드 소울(푸른 눈의 소울, 즉 백인소울이란 말)로 부른다. 화이트 소울 가수들은 소울을 백인도 할 수 있음을 증명했다. 그러나 백인들은 설령 고음을 구사해도 흑인들만의 진한 맛을 따라가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소울은 결국 하나의 양식이 아니라 노래부르는 사람의 혼과 자세와 결부되어있다. 따라서 1960년대 흑인인권운동이라는 사회사를 빼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 자주 혼동되는 리듬 앤 블루스와 구분해서 이해할 수 있는 것도 바로 이 지점이다. 그렇다면 현재 흑인들의 저항의식을 담고있는 힙합은 '이 시대 소울'이 된다.
소울은 대중음악이 한때의 유행가가 아니라 시대에 맞선 예술가의 정신과 혼의 결과임을 가르쳐주었다. 음악 하는 사람에게 정신과 혼이 없다면 그 음악은 기계로 찍어낸 공장제품이나 다름없으며 진실하게 들릴 리 없다. 마치 소울이 없는 음식이 제 맛이 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의 이치다. 많은 음악관계자들이 공장제품과 같은 음악들의 판치고 있는 지금, 1960년대의 소울을 그리워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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