팝의 역사 - 12(1970년대의 팝음악 2
2015.08.30 09:53
팝의 역사 - (12) 1970년대의 팝음악 2
Progressive Rock/Art Rock
80년대 헤비메탈과 더불어 국내 팝송 청취자들의 양대 선호 음악의 하나였던 아트 록/프로그레시브 록이다. 주로 심야 시간 라디오 프로그램, 예를 들면 성시완의 [음악이 흐르는 밤에]와 전영혁의 [음악세계] 등을 통해 흘러 나온 아트 록은 그 드넓은 예술성과 클래식 감성으로 초등학교 시절부터 클래식 정서에 익숙했던 국내 음악 팬들의 감성을 적셨다. 또 다른 한편으로는 꽤나 음악을 듣는다 자부하는 리스너들의 엘리티즘을 양산시켰고 또 충족시켰다. 음악적 측면으로는 후대에 신시사이저를 비롯한 각종 전자 악기의 발전을 가져오기도 했다.
프로그레시브 록과 아트 록, 그리고 클래시컬 록(classical rock) 이 세 용어는 거의 같은 의미로 쓰인다고 이해하면 된다. 말 그대로 클래식적이고 진보적이며 예술적인 록 음악이다(통상 아트 록이란 용어는 유럽 지역에서 사용한다).
아트 록은 주로 영국을 중심으로 60년대 중,후반 사이키델릭 록의 영향을 받아 등장했다. 왜 사이키델릭의 영향을 받았는가. 사이키델릭은 ‘new & different’의 의미, 즉 새롭고 색다르다는 의미를 내포했으며, 다양한 실험으로 예술성을 확보한 음악 스타일이었기 때문이다.
일부 사이키델릭 록 밴드들이 시간이 흐르면서 고전음악과 키보드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이면서 아트 록 쪽으로 기울기 시작했다.
아트 록 역시 기존의 대중음악 외에 클래식을 소재로 다양한 음악 실험을 하면서 록의 표현 양식을 확대했다는 데 가장 큰 의의를 둘 수 있다(이는 재즈 록 퓨전과도 일맥상통한다). 그러나 당시 록 잡지들은 그 양식을 ‘록의 위배’라고 봤으며 록과 클래식은 결합될 수 없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이러한 아트 록/프로그레시브 록의 시초가 된 앨범으로 비틀스의 [Sgt. Pepper’s Lonely Hearts Club Band]를 꼽곤 한다. 사이키델릭 록 명반 중의 하나이기도 한 비틀스의 그 레코드는 하나의 일관된 주제로 이루어진 컨셉트 앨범인 동시에 단 한 장의 싱글도 내지 않은 완전한 앨범 중심의 작품이었기 때문이다. 사운드적인 측면에서도 사이키델릭하면서도 클래식한 기법, 다양한 음향 효과 같은 아트 록의 모범이 될 만한 부분을 상당수 포함하고 있었다. [Sgt. Pepper’s Lonely Hearts Club Band] 이후 대중들은 싱글이 아닌 앨범 위주로 듣게 되었다.
‘Nights In White Satin’이란 곡으로 기억되는 무디 블루스(Moody Blues)와 프로콜 하럼(Procol Harum)은 클래식 록 무브먼트의 첫 주자로 손꼽힌다. 특히 브리티시 리듬 앤 블루스 그룹으로 출발해 사이키델릭을 거쳐 프로그레시브 록 밴드로 거듭난 무디 블루스는 프로그레시브를 최초로 대중에게 알린 그룹으로 평가 받는다. 그들은 1967년부터 바이올린, 트럼펫, 첼로, 그리고 다른 오케스트라 악기들의 소리를 뽑아내는 키보드와 멜로트론을 이용해 색다른 사운드를 펼쳐보였다. 역시 리듬 앤 블루스 밴드로 시작한 프로콜 하럼도 ‘A Whiter Shade Of Pale’에서 바흐(Bach)의 D단조 3번을 차용하면서 클래식 요소를 접목시켰다.
프로그레시브 명곡 ‘Epitaph’의 주인공 킹 크림슨(King Crimson)은 70년대 클래시컬 록의 원형이었다. 팀의 리더이자 기타와 멜로트론을 담당했던 로버트 프립(Robert Fripp)은 클래식 기타 테크닉과 울부짖는 록 사운드를 결합시켰다. 킹 크림슨의 기타리스트였던 그렉 레이크(Greg Lake)는 얼마 후 그룹을 탈퇴해 클래식 소양을 쌓은 피아니스트 키스 에머슨(Keith Emerson), 드러머 칼 파머(Carl Palmer)와 함께 에머슨 레이크 & 파머(ELP)라는 또 하나의 걸출한 아트 록 밴드를 만들었다. 1970년 'Isle Of Wight Festival' 무대를 통해 데뷔한 ELP는 무소르그스키의 록 해석판 [Picture At An Exhibition]을 발표하면서 명성을 얻었다. 특히 키스 에머슨의 키보드 연주는 정평이 났으며, 국내에서는 ‘Cest la vie’가 큰 인기를 얻었다.
명 프로듀서 제프 린(Jeff Lynn)이 창설한 일렉트릭 라이트 오케스트라(Electric Light Orchestra)도 빼놓을 수 없으며, 무엇보다 핑크 플로이드(Pink Floyd)는 거대한 산과 같은 프로그레시브 밴드였다. 보컬리스트 시드 배럿(Sid Barrett), 베이스 주자 로저 워터스(Roger Waters) 등이 핵심 멤버였던 핑크 플로이드는 리듬 앤 블루스 밴드로 출발해서 1967년까지 사이키델릭 사운드를 발전시켰다. 1968년 시드 배럿이 약물 문제로 곤란에 빠지자 그룹은 기타리스트 데이빗 길모어를 영입했다. 길모어가 들어오면서 밴드는 좀더 클래식한 사운드로 전환했다. 핑크 플로이드는 소외, 편집증, 광기 같은 사회 비판적 메시지를 서사적인 곡 구조 속에 담아냈으며, 바그너 식의 웅장한 전자 사운드를 들려줬다. 1973년에 발표한 그들의 걸작 [Dark Side Of The Moon]는 1천3백만장 이상의 판매량을 기록하며 프로그레시브 록은 물론 팝 역사에서도 최고의 음반 대열에 끼었다.
이밖에도 ‘Roundabout’이라는 명곡을 남긴 예스(Yes), ‘Ocean Gypsy’에서 애니 해슬럼의 매혹적인 음색이 기억에 남는 르네상스(Renaissance), 피터 가브리엘, 필 콜린스가 함께 있던 제네시스(Genesis) 등도 이 시대를 풍미한 프로그레시브 록 밴드들이었다.
그 밖의 주요 흐름들
1970년대 영국과 미국을 관통하는 주된 경향은 절충주의와 통합과 퓨전이었다. 다만 50년대 초반 로큰롤의 탄생이나 60년대 록의 출현 같은 강력한 새로운 음악 흐름은 없었다. 라디오에서는 보수적인 록과 팝 패턴이 보급되었다. 그리고 어떤 경우에는 록 시대 이전인 틴 팬 앨리 스타일까지 거슬러 오르는 역행현상도 있었다.
의도는 전혀 다르지만 비슷한 움직임으로 60년대 후반부터 소박한 삶의 희구와 전원에서의 삶을 노래하는 컨트리 록으로의 회귀현상이 두드러졌다.
크로스비 스틸스 내시 & 영, 버즈, 더 밴드 등에 의해 시도된 이 ‘뿌리로의 귀환’ 현상은 70년대에도 계속 이어졌다. 여성 성어 린다 론스태드(Linda Ronstadt)는 컨트리 록의 최고 스타였다.
그녀는 1968년 ‘Different Drum’을 통해 이름을 널리 알렸으며 이글스의 대표곡 중의 하나인 ‘Desperado’ 역시 그녀가 불러 히트했다. 나중에 환경운동에 헌신하는 잭슨 브라운(Jackson Browne)은 이글스의 ‘Take It Easy’를 공동 작곡하는 등 여러 컨트리 록 밴드들과도 꾸준하게 교류했으며, ‘Load Out / Stay’, ‘Running On Empty’ 같은 노래를 히트시켰다.
헤비 메탈과 하드 록 또한 이 시대에 폭발한 음악이다. 지미 헨드릭스, 에릭 클랩튼에 의해 리바이벌된 블루스는 증폭된 전기 기타와 만나면서 파괴적인 중금속 사운드로 발전되었다. 여기에 마초 이미지를 더해서 헤비 메탈과 하드 록은 남근성을 상징하는 사운드가 되었다. 헤비 메탈이라는 어원은 1968년에 발표된 스테판울프(Steppenwolf)의 ‘Born To Be Wild’에서 왔다고 보기도 하는데, 이는 그 가사 속에 ‘heavy metal thunder’라는 가사가 담겨 있었기 때문이다. 딥 퍼플을 비롯해 레드 제플린, 블랙 사바스, 그랜드 펑크 레일로드, 에어로스미스, 바닐라 퍼지, 블루 오이스터 컬트 등의 음악에서 그 강력한 울부짖음을 만날 수 있다. 빼어난 멜로디가 담긴 기타 리프와 간혹 들려주는 록 발라드는 헤비 메탈의 중요한 특성 중 하나다.
엘튼 존(Elton John)은 70년대의 전형적인 록 아티스트였다.
런던의 로열 음악 아카데미에서 5년 간 피아노 연주자로 교육을 받은 엘튼 존은 원래 한동안 블루스 밴드에서 연주만 했었다. 그러다가 1960년대 후반부터 작사가 버니 토핀과 함께 곡 쓰기를 시작했다.
그의 첫 앨범 [Elton John](1970)은 영국과 미국에서 거대한 성공을 거두었고, 이때부터 그의 성공가도가 시작된다.
엘튼 존의 노래는 부드럽고 향수를 자극하는 것에서부터 거칠고 유머러스한 것까지 광범위한 표현 영역을 자랑했다. 또 로큰롤에서부터 컨트리, 무거운 음악 등 다채로운 음악 스타일을 소화해냈다. 밴드나 작은 오케스트라를 동반할 때도 그의 가장 큰 미덕인 피아노 연주와 그의 개성 있는 존재는 늘 그 어떤 것보다 빛났다.
글 출처 : 라디오 3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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